양과 염소

이번 여행에서 받은 가장 큰 은혜를 하나 나누려고 합니다. 비포장 도로에서 차를 타고 달리는데 양과 염소의 무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양들은 차가 와도 안 비킨답니다. 시력도 좋지 않고 청력도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염소는 빨리 빨리 피한답니다. 그래서 양과 염소의 무리가 섞여 있으면 양들은 염소를 따라서 피한답니다. 염소는 보기도 잘 보고 듣기도 잘 듣는 것이죠.
 
이렇게 양은 염소에 비해서 나은 것이 거의 없답니다. 그런데 딱 하나가 다르답니다. 양은 얌전히 죽는답니다. 염소는 잡으려고 하면 소리를 지르고 길길이 뛰면서 도망을 가려고 하는데 양은 그저 조용히 주인의 칼을 받아 죽는다고 합니다.
 
이사야서 53장 7절은 예수님을 가리켜 “곤욕을 당할 때에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이 잠잠히 그 입을 열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를 죽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 교회에서 가장 보기 힘든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잠잠히 죽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으시는데 이 시대 교회는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신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그들을 모르실까요?

예수님의 능력은 있었지만 예수님의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법이 뭡니까? 예수님의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를 가르십니다. 양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고 주인을 위해서 죽은 사람들입니다. 염소는 그 반대입니다. 어떻게든 죽지 않으려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한 사람들이에요.
 
주님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얌전히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는 도저히 성경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고 말도 안되는 일을 강요하는 것 같아도 주님의 말씀이니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받으신 영광을 하늘에서 나누어 주시는 것이 바로 상급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기를 낮추시고 죽이십시오. 손해봐도 참고 억울해도 참고 예수님처럼 잠잠히 자기를 죽이십시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죽음 위에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세우시고 우리를 그 나라의 영원한 상속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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