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있다고 구원 받지 못합니다
로마서 2장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오늘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아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구절입니다만 그것은 거두절미하고 14-15절만을 근거로 하는 터무니 없는 주장입니다.
우선 여지껏 바울이 말한 율법에 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율법을 받은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12절의 말씀은 율법이 있는 자는 율법으로 심판을 받고 율법이 없는 사람은 율법이 없어서 망한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받은 자들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데 이방인에게 양심이 율법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어떻게 구원의 근거가 됩니까? 율법으로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양심이 있는 사람도 그것 가지고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16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란 말씀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은밀한 것이라는 말은 남들은 알지 못하는 죄, 심지어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악한 의도와 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 양심대로 사는 사람도 정말로 드물거니와 그 양심조차도 자기의 욕심에 의해서 많은 것이 자기도 느끼지 못하는 은밀한 곳에 감춰지고 조작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안을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말과 행위는 더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속에 있는 동기를 철저하게 파헤쳐 보십시오.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악하고 이기적이며 교만한 자기를 발견할 것입니다. 다만 이런 자아는 마치 자기 몸에 배어 있는 냄새와 같이 어지간해서는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물질적인 빛처럼 굴절되고 차단되는 빛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꿰뚫는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그 앞에 무엇을 숨기거나 속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거짓말장이는 요한 1서 1 장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 앞에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았던 사람들 중에 가장 대하기 힘든 사람들은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는 하루에 몇 시간을 기도한다, 성경을 많이 안다, 봉사를 많이 한다 등의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보기에도 그 사람이 회개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보입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는 어떻겠습니까?
건강진단을 받을 때 엑스레이나 내시경 같은 검사를 하면서도 혹시 병이 있을까봐 일말의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데 우리도 모르는 우리의 내면까지 다 헤집어 비추시는 그 빛 앞에 서는 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처음부터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들은 가끔씩 예외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는 예외는 없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기초입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고 선은 상을 받는 것이 예외없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야 갈 길이 정해집니다. 만약에 예외가 있다면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이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는 헛고생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어렵겠지만 예전에는 수십만원 짜리 음악회도 계속 그 앞에서 서성이다 보면 들어가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천국은 이 음악회들처럼 어딘 가에 구멍이 뚫려 있는 허술한 곳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100퍼센트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그 곳이 영원한 곳입니다. 0. 01퍼센트의 예외라 할지라도 영원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무한한 구멍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저도 같은 마음을 가진 적이 있기에 말씀드립니다만 혹시라도 요행을 바라시는 분이나, 자기에게 조금 있는 선한 면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움직이려는 생각이 있다면 로마서 초반부를 다루는 동안에 깨끗이 지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완벽한 죄인으로 발견되어야 예수께서 우리의 삶을 완전히 붙드실 수 있습니다. 갈수록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숨겨져 있는 것들이 더 드러나는 것이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 분이 참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냉정해야 합니다. 계시록 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하신 말씀 중에 ‘차든지’ 라는 말의 뜻이 냉정하게 자기를 말씀과 비교해 보라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의 허물이야 말로 차갑지 않으면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실체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소경이 눈을 뜨는 역사입니다. 죄를 발견하는 괴로움과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그것을 씻어내는 기쁨이 죄사함의 감사가 끊이지 않게 합니다. 주님 앞에 겸손하고 주님만 찬양하는 삶이 날마다 계속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나의 믿음이 아니라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하게 하소서
- 냉정하게 자신의 죄를 보고 회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언제나 안전한 길 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