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이 나의 진짜 집이지?
언제부턴가 언니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변변한 옷 하나 사 입지 못하더니 최고급 인테리어 자료 책을 뒤적이는 것은 물론이고 급기야 집치장이 시작된 것이다. 장롱, 화장대, 문갑, 식탁 등 가구는 말할 것도 없고 고가의 가전제품, 커튼… 끝이 없었다.
언니는 신혼 때부터 극도로 근검절약하며 살아왔다. 남편이 해외근무 나가 있던 5년 동안 보내주는 급료는 단 한푼도 축내지 않고 알알이 모아 저축을 했다.
언니는 가내수공 일을 해서 자신이 기본적인 생활비를 벌어서 지냈다. 교회 건축헌금으로 500만원을 작정했는데 등산객들이 관악산에 버려두고 가는 빈 병을 주워서 약속한 금액 전액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초등학교 앞에 있는 문방구를 구입할 수 있었다. 언니는 그 초등학교 학생 전체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어디 이름 뿐이랴! 집안 형편까지 거의 다 알고 있었다.
점심이 어려운 아이에게 점심을 주고, 라면을 끓여 주고 언덕에 있는 언니네 문방구는 길을 지나가는 동네 노인들의 쉼터이기도 했다.
언니는 주일날 교회에 가려면 변변한 양말 하나도 없었지만 언니에 집 앞에는 일 주일 동안 전도해 놓은 새신자들이 줄을 섰고 언니는 그 사람들을 택시에 태워 교회로 몰고 갔다.
언니네 부엌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하나 있었는데 언니는 물건을 팔다가 동전을 한 웅큼씩 갖고 들어와 그 항아리에 부었다. 그 항아리에 부어진 돈은 불쌍한 사람들을 을 위해서 쓰는 돈이었다.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모으는 문방구였지만 5년 동안 부지런히 일하자 3층짜리 집을 살 수 있었다. 또 이제는 서울 번화한 상가에 매출이 많은 점포를 구입하게 되었다.
언니는 서울로 이사를 했다. 있는 돈은 점포를 구입하는 데 다 쓰고 종로구 창신동 산꼭대기에 있는 낙후된 아파트를 전세로 얻었다. 내가 그 아파트에 가보면 오늘 다 철거해도 아까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언니네 지에 가구는 거의 다 주워온 것뿐이었다.
이렇게 작은 돈을 아낄 줄 알고 써야 할 가치가 있는 곳에는 큰 돈도 아끼지 않고 선뜻 내놓던 언니를 변하게 한 사건이 생겼다. 그것은 언니가 새로 구입한 연수동에 있는 50평짜리 아파트였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니 인천에 있는 아파트가 무슨 소용이람! 그러나 그것은 모르는 말씀이었다. 언니의 삶의 모든 꿈은 그 아파트에 있었다. 천만 원이 넘는 향기 나는 장롱이래나 그 장롱과 한 짝을 이룬다는 고가의 화장대, 문갑, 보료… 그것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언니는 열심히 더 열심히 일했다.
나는 언니를 만나면 “언니, 그 좋은 가구들이 방안에 가득하면 뭐해? 언니가 쓰지 않으니 창고에 쌓아 두는 것과 뭐가 다른 거야?”
“모르는 소리 마라. 나에게도 50평짜리 아파트가 있구나 생각하면 괜히 신바람이 나고 행복한 것 모르니? 내가 매일 저녁에 창신동 산꼭대기 빈민 아파트를 찾아 들어가지만 하나도 비참하지 않고 당당하고 어깨가 으쓱한 이유는 나의 진짜 집이 있기 때문이야. 그 아파트는 편하게 직장 다니려고 임시로 머무는 곳이니까 아무런 치장을 할 필요가 없어.”
언니는 연수동 아파트는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뿌듯하고 행복한가보다. 이젠 돈을 버는 목표도 뚜렷하다. 이번엔 통나무로 된 식탁을 구입할 목표다. 이번엔 대형 냉장고, 다음엔 에어컨….
이렇게 계속 가구 장만을 하며 아방궁을 꾸며 가느라고 정작 언니가 그토록 잘 보살펴 주던 이웃들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언니! 이 땅에 있는 것은 영원한 것 아니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잠깐이야. 창신동 아파트도 임시로 빌려 쓰는 것이고 연수동 아파트도 임시로 빌려 쓰고 가는 것은 똑같아. 모든 것이 우리네 살아 있을 동안만 잠시 빌려 쓰는 것인데 좋으면 어떻고 나쁘면 또 어떻겠어?
우리의 진짜 치장할 집은 저 하늘에 있어. 연수동 집 치장하느라고 저 하늘의 언니 집은 텅텅 비어 있잖아. 하찮은 연수동 집이 언니에게 언제나 부자 같고 행복하게 해 준다면서 우리는 하늘나라에 있는 집을 생각하며 얼마나 기뻐해야 하겠어?”
“하늘나라에 있는 내 집은 안 보이니까 잘 모르고 나의 진짜 집은 연수동 집이야!”
그렇게 언니를 기쁘게 해주던 연수동 집에서 언니는 단 하루도 살지 못하고 어느 이런 겨울 새벽 사고로 죽고 말았다. 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나이에. 언니가 진짜 자기 집으로 알고 행복해하며 자랑하던 연수동 아파트는 단번에 팔아야 했다.
언니의 큰아들에게 시집오는 신부는 그 집이 싫단다. 언니가 사다 놓고 써보지 못하고 매만지기만 하던 장롱도 젊은 감각에 맞지 않아 싫다고 하니 버리는 데 돈 줘야 하는 쓰레기 신세다. 가죽 소파도 화장대도 줄줄이 쓰레기 신세가 되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언니의 진짜 집은 처음부터 진짜가 아니었다. 언니는 자기가 잘못 알고 있던 진짜 집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후회했을까? 정작 언니가 영원히 살아야 할 진짜 집은 창고가 텅텅 비어 있었을테니…
아무 것도 준비해 놓은 것이 없는 초라한 집에 엉겹결에 도착한 우리 언니! 평소 눈이 컸던 언니의 눈은 더욱 커졌으리라. 평소 눈물이 많던 언니의 눈에서는 뼈아픈 후회의 눈물이 쏟아졌으리라.
장롱 살 돈으로 그 불쌍한 이웃들을 돌아볼 것을! 둘둘 말아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커튼 살 돈으로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선교비로 보내야 할 것을! 어느 집이 진짜 나의 집인지 진작에 알지 못한 어리석음을 가슴을 치며 통곡했을 것이다.
며칠 기거할 텐트가 20평이면 어떻고 50평이면 어떠랴! 좋으면 어떻고 나쁘면 어떠랴! 그 모든 것이 우리네 잠깐 살고 갈 동안 빌린 천막들인 것을!
천막 치장하느라 더 이상 울고불고 하지 말아야 하리라. 영광의 나라에 준비된 우리들의 진짜 집이 있는 것을 즐거워하고 한없이 행복해야 하리라! 그 창고에 가득가득 저축해야지!
유정옥 사모님의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