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도 심하지 않다

사도행전 20장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바울은 복음에 매인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멸망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복된 소식을 전했지만 그는 어디를 가든지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온갖 모욕을 당하고 시험을 당했습니다.

바울이 당한 모든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의 성도들도 그의 일생이 참 고되고 비참하다고 느끼고 자기도 그런 삶을 살까봐 겁을 냅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저 평범한 가장 한 명의 일상을 봅시다. 그는 매일 아침에 더 자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이기고 7시에 눈을 뜹니다. 씻고 난 후 아침은 거르거나 간단하게 먹고 7시 반에 집을 나섭니다. 길이 막히면 9시 아니면 8시 반 즘에 직장에 도착하면 커피 한 잔을 먹고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맡겨진 일을 합니다. 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거기에 직장 상사, 동료, 부하직원들과의 마찰도 있습니다. 특별히 사람이 모인 곳에는 항상 있는 경쟁과 정치는 누구도 믿을 수 없도록 만듭니다.

거의 매일 일을 그만두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하며 눈물과 함께 그 말을 삼켜버립니다. 그렇다고 집에서도 가장으로 존경을 받지도 못하는 그는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 평균적인 가장의 삶입니다. 가장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내는 아내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다 비슷한 고통을 가지고 삽니다. 하지만 누구도 이런 삶을 불쌍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가정이 있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만약 똑같은 고생을 해서 다른 사람보다 많은 돈을 벌거나 자녀들을 잘 키우면 세상은 그 사람을 성공한 인생으로 여기며 그런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다시 바울의 이야기로 돌아와 봅시다. 그는 자기가 하는 고생은 앞으로 받을 영원한 영광에 비교한다면 너무나 가벼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겸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실제 계산에서 나온 것입니다.

백만 불은 큰 돈입니다만 그 돈으로 맨하탄의 20층 짜리 빌딩을 샀다면 아무도 그 사람이 큰 돈을 썼다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당한 고난은 분명히 어려운 것이지만 그가 받을 상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바울이기에 주님의 일을 하면서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앞으로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전날 저녁에 밤이 새도록 말씀을 가르쳤고, 자기가 혹시라도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지 않도록 항상 모든 사람과 깨끗하려고 온힘을 다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열심을 내어 교회와 사람들을 섬길 때, 자기도 모르게 선심을 쓰는 듯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선심이라는 말의 뜻을 하시지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안 해도 될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자기를 찾는 이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에 그 일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상이 있는데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들 그것이 선심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기본자세를 바꾸어야 합니다. 여지껏 살아왔던 삶에 기독교 신앙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를 주님을 섬기는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나름대로의 목적을 위해 고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목적을 영생의 축복으로 바꾸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영생이 실제라면 어떤 고난과 희생도 심하지 않습니다. 이 축복의 삶을 살아가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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