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 인정하기
1 “주님, 당신 앞에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 저의 연약함을 당신에게 고백 합니다. 저는 사소한 일에 쉽게 우울해지고 또 슬픔에 빠집니다. 용감하게 행동하려고 결심하지만 작은 유혹에도 흔들리고 맙니다. 때로는 아주 간단한 일에서 큰 욕망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제 스스로 좀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 자신을 정복당하고 맙니다.”
2 “그러므로 주님, 당신께서 아시는 대로 저의 비천함과 연약함을 굽어보소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를 수렁에서 붙들어 가라앉지 않게 하소서. 그래서 제가 영원히 낙담에 빠져 있지 않게 하소서. 저는 너무 쉽게 넘어지고, 욕정을 억제하는 데 너무도 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부끄럽습니다.
제가 이러한 유혹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모든 유혹이 저를 괴롭히고, 또한 낙담시키기 때문에 늘 긴장 속에 살다 보니 너무 지칩니다. 허황된 공상은 떠날 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제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옵니다. 이 얼마나 연약한 모습입니까?”
3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믿는 영혼을 열렬히 사랑하는 분이시여! 당신 종의 노력과 슬픔을 굽어 살피셔서 그 종이 도모하는 모든 일을 도우소서. 하늘에서 오는 용기로 저를 강건하게 하소서. 그래서 ‘옛 사람’, 즉 아직도 영혼에 온전히 굴복하지 않는 저의 가련한 육체가 승리하지 못하게 하소서. 이 불행한 삶에서 제 숨이 계속 되는 한 육체와의 싸움을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고난과 불행이 그치지 않고, 만사가 유혹과 온갖 적으로 가득합니다. 하나의 고통과 유혹이 지나가면 또 다른 고통과 유혹이 닥쳐오고, 처음 일어난 갈등이 아직 풀리지 않았는데, 또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갈등이 찾 아옵니다.”
4 “엄청난 고난과 많은 재앙, 불행을 동반하는 인간의 삶이 어떻게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까? 삶은 수없이 많은 죽음과 질병을 안고 있는데, 어떻게 이것을 삶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사랑하며 그 속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세상은 거짓으로 충만하고 공허하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세상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육체의 욕구가 세상을 강하게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무엇인가 사람을 사랑으로 이끄는 것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세상을 경멸하도록 합니다.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 살림살이에 대한 자랑’ (요일 2:16 참조)이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도록 인도합니다. 그러나 욕망을 뒤쫓아 오는 벌과 불행이 우리들에게 세상을 증오하게 합니다.”
5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상일에 전념하는 사람은 무익한 기쁨에 몰두한 나머지 쐐기풀 아래에도 기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덕성의 내적 아름다움을 직접 보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철저히 경멸하고, 거룩한 규율을 지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부인하는 사람들이게 약속된 하나님의 은혜를 아주 잘 압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고, 기만으로 가득 차 있음을 더욱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