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가지 은밀한 죄 (5)
다른 소제목과 혼동을 해서 열두 가지인데 여지껏 열 가지로 제목을 올렸습니다.
(9) 자기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에게 앙심을 품고 시기하는 것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는데, 자기가 당한 모욕을 잊지 않고 앙심을 품으며, 악을 악으로 갚고, 복수하고 싶어하며, 자기에게 해악을 끼친 사람들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은 복음의 교훈이나 그리스도의 모범이나 하나님의 성품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입니다.
이 은밀하게 감추어진 악이 마음 속에 계속해서 끓고 있는데도, 자신의 그러한 악을 미워하거나 저항하거나 죽이지 않고, 도리어 그 악에 의해서 늘 지배당하는 가운데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그 속에 악독이 가득한 사람이고, 사망의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10) 교만이 펄펄 살아 있는 것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칭찬보다 사람들의 칭찬을 더 좋아해서,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박수갈채와 인정을 받는 데 마음을 두는 자들은 참된 회심을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여전히 죄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교만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탄식하지도 않으며 괴로워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죄 가운데서 죽어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교만의 죄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주 은밀하게 살아 있으면서 그들을 지배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속에 교만이 펄펄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살아갑니다.
(11) 쾌락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
이것은 불길한 증표입니다. 육신의 욕심들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육신이 원하고 기뻐하는 것들이라면 다 들어주고 육신으로 하여금 방종하게 제멋대로 행하도록 내버려 두며, 자신의 배를 만족시키고 자신의 오감을 즐겁게 해주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겉으로 아무리 신앙이 깊고 경건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 신앙과 경건은 다 거짓된 것입니다.
육신을 기쁘게 해 주는 삶을 사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육신을 자신의 원수로 여겨서 늘 철저하게 통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죠셉 얼라인의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보내는 경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