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힘을 앗아가는 죄
‘죄 죽이기’ 를 통해서만 죄가 영적인 활력과 위로를 박탈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죽이지 못한 죄는 어느 것이든지 반드시 다음의 두 가지 일들을 할 것입니다.
하나는 영혼을 약하게 하며 그 활력을 빼앗아 가는 것이고,또 다른 하나는 영혼의 위로와 평강을 앗아가는 일입니다.
영혼을 약하게 하고 영혼의 힘을 앗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다윗이 죽이지 않은 정욕을 한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을 때에, 그 정욕이 그의 모든 뼈를 부서지게 하고 영적인 힘을 아주 소진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병들고 약하고 상처받고 파리 해져 있다고 탄식하였습니다. “내 살에 성한 곳에 없사오며”(시 38:3).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8절). ‘내가 …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시 40:12).
죽이지 않은 정욕이 그 영혼의 모든 활력을 삼켜 영혼을 약하게 만들고 마땅한 모든 도리를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 첫째 이유는 마음의 정서를 뒤엉키게 만들어 마음 자체가 갈피를 잃고 틀이 깨지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죽이지 않은 정욕이 하나님과의 활발한 교제를 위해 요청되는 영적인 기틀을 벗어나게 하 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서를 붙들고 사모하며 바라는 대상만을 고 집하여 주목하게 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서 몰아냅니다(요일 2:15; 3:17). 그래서 그 영혼은 하나님께 “주는 나의 분깃이니이다”라고 참되고 정직하게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영혼이 사랑하는 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으로 충일해야 하는 영혼의 정서들, 곧 두려움과 소원과 소망이 이런 저런 방식 속에서 다른 사랑의 대상으로 말미암아 뒤얽히게 됩니다.
다시, 그 영혼은 자기가 사모하는 것들을 위한 여러 궁리들로 생각을 채우게 됩니다. 그런 생각들은 영혼의 정서를 채우는 일을 합니다. 만일 죽이지 않는 죄를 마음에 그냥 그대로 남겨 둔다면, 생각들은 ‘육체’ 를 위해서만 필요한 것들을 조달 함으로 육체의 정욕을 채워줍니다.
생각들은 육체의 대상들을 빛나게 하고 장식하고 옷 입혀 주고, 육체의 만족을 위해서 그 대상들을 집으로 들여옵니다.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더러운 상상을 현실화하 기 위해서 그러한 일도 서슴치 않는 것입니다.
급기야 죽이지 않고 내버려둔 죄는 우리로 하여금 마땅한 도리를 어기도록 능동적으로 방해하게 됩니다. 야심적인 사람은 그 야심을 이루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적인 정신은 끊임없이 일하고 궁리합니다. 육욕적인 허망함에 취한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에도 허영을 위해 자신을 드립니다.
죽이지 않은 정욕 이 영혼에 가져올 수 있는 그 균열과 파멸과 연약과 황폐함을 밝히려 한다면, 이 강론은 제가 본래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이 될 것입니다.
죤 오웬의 ‘죄 죽이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