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을 넘어서는 사명

사도행전 21장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은사는 사람의 능력이나 순종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그 뜻대로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은사를 받은 것은 그만큼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은사를 사용하는 것 자체에는 하늘의 상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선지자 아가보는 가짜 예언자가 아닙니다. 이 일 이후의 사도행전을 보면 그가 예언한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잡혀 많은 일들을 거쳐서 로마에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목적과 수단을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의 최종 목적을 알지 못하면 능력과 지혜가 아무 소용이 없을 수가 있습니다.

목적지를 알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목적지를 모르고 스포츠카를 타는 달리는 것보다 나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가보 선지자가 바울이 로마에서 잡히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을 들었을 때 바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울면서 바울을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말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목적이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의 목적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자기가 정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 마음을 붙잡으셔서 정해주신 일이었습니다.

잘못 생각하면 성령께서 두 사람에게 다른 말씀을 주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바울에게는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셨고 아가보에게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잡히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말씀이 다른 것으로 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회를 세우시고 이끌어 나가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도 큰 능력의 종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바울이 교회를 세운 것도 아니고 바울이 교회를 이끌어나가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바울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날이 잘 갈아진 칼일 뿐입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네로의 기독교 박해 때에 로마에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그를 교회의 기둥처럼 여겼기 때문에 자기들은 죽어도 베드로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로마에서 도망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성도들처럼 눈물로 호소했겠지요.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로마를 떠나가던 중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반갑게 주님을 맞이하던 베드로를 그냥 지나쳐 가시던 주님께 베드로가 묻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버린 내 양들을 위해 다시 십자가에 달리러 로마에 간다.”

베드로는 그 말씀을 듣고 자기가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길로 로마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밖으려는 로마 사람들에게 자기는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릴 자격이 없으니 거꾸로 매달아 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순교하게 됩니다.

당시에 로마에 있던 성도들이나 지금 바울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이 사도들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이 큰 지장을 받는 줄 생각하고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장 복된 성도는 주님 뜻대로 살다가 주님 뜻대로 죽는 성도입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자는 듯이 가는 것도 복이겠지만 순교자가 받을 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두움과 고난의 시대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난을 피하는 지혜가 아니라 고난에 관한 예언에도, 성도들의 눈물의 호소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바울의 굳건한 믿음입니다.

상황이 어려워진다고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지고 직진하여 돌파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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