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의 능력
오순절은 사도들에게 고통을 의미했지만 우리에게는 즐거움을 의미한다. 오순절은 사도들에게 영적 의무를 부여했지만 우리에게는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오순절은 사도들에게는 감옥을 의미했지만 우리는 감옥에 가는 일을 결사적으로 피하려고 애쓴다. 우리가 오순절 사건 이후의 사도들처럼 산다면 틀림없이 감옥에 갈 것이다.
당신의 교회에서 이번 주일에 그 당시 오순절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베드로처럼 큰 능력을 받았고 당신의 말 한마디에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가 쓰러진다.
바울이 소리쳤을 때 엘루마가 실명했듯이 당신이 소리를 치자 누군가 실명한다. 만일 이런 일이 오늘날 일어난다면 당신은 고소를 당할 것이다. 당신이 부흥회를 인도할 때 사람들이 바닥에 넙죽 엎드리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이다.
마귀는 우리가 사소한 것들에 매달리도록 유도한다. 사자들이 넓은 땅을 삼키고 있는 동안 우리는 생쥐들을 잡으려고 동분서주하게 만든다.
나는 바울이 아라비아 광야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잘 모른다. 사실 아무도 이것을 모른다. 거기서 그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슬쩍 보는 중에 높은 보좌에서 만유를 통치하시는 주님을 보았을까?
글쎄, 나는 달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아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가 유대인들의 편견을 질타하고, 로마인들을 놀라게 하고, 선생들을 가르치고, 감옥의 간수를 불쌍히 여겼다는 사실이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 실라는 기도로 감옥문을 열었다. 떨어져나간 감옥문을 고치는데 얼마간의 세금이 더 사용되었겠지만 간수가 구원 얻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본래 바울은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다루기 힘든 완고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강력한 개입으로 변화된 그는 ‘사랑의 종’이 되어 이방을 뒤흔들었다.
그는 ‘내세의 능력’을 보여주고 사탄을 억제하였다. 그는 우리보다 더 많이 고난 받았고 더 많이 기도했고 더 많이 사랑했다.
오, 형제들이여! 다시 무릎을 꿇자. 다시 사도들의 경건을 배우고 그들처럼 능력의 종이 되자. 맥없고 넌더리 나는 설교를 당장 그만두라
레너드 레븐힐의 ‘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