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배드리기 위해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창조의 첫째 목적은 도덕적 존재를 영적으로, 또한 지적으로 준비시켜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있었다. 이것은 여러 세기 동안 줄곧 신학자들과 성경 해석자들이 동의해온 것으로 굳이 내가 여기에서 논증하려고 시도하지 않겠다.
성경은 이것을 너무나 분명히 가르치고 있고, 성도들은 그들의 삶을 통하여 이것을 풍성하게 드러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며, 이 전제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과거에 하신 모든 것, 그리고 지금 하고 계신 모든 것은 바로 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이다.우리는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이 말씀하는 그런 분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주장하는 대로 우리가 신자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야 한다.
위로부터의 신생, 즉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영으로 말미암는 중생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개인적 체험이 없는 사람은 그분을 숭모하여 예배하는 데서 아무런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의 사람이 우리 안에 있고, 그분의 영이 우리 안에 찬양을 불어넣어주신다면, 천국의 모든 악기들 또한 재빨리 연주를 시작하여 우리를 완벽하게 도와줄 것이다.
내 삶 속에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면 나는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 주일에 참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월요일에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면 주일예배는 결국 진정한 예배가 아니다.
주일에 기쁨에 찬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한 후 월요일과 화요일에 사업상의 문제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린다면 주일 예배는 의미가 없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리는 것이 내 안에 전혀 없어야 비로소 나의 예배가 그분을 온전히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 것이다. 예배의 매력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 이후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이루어진 모든 위대한 일들은 예배를 지극히 사모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건대, 예배를 사모하고 갈망했던 사람들이 큰일을 이루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가 잠에서 깨어나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난 후 영적으로 새롭게 되어 부흥한 경우를 보라. 그 뒤에는 반드시 예배를 사모하는 자들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에는 부족한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우리 자신을 참되고 거룩하게 드리려는 결단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즉 하나님을 위한 예배이다.
우리가 진정한 예배자들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육적이고 세상적인 종교 프로젝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신자 개개인이 활력 넘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전심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예배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성령님은 어떤 사람의 선입견에 따른 고정된 형식에 의해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기름을 부으실 때 우리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다.
이 말이 이상하다고 느껴지거나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와 사랑과 자비와 진리의 하나님을 숭모하며 예배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기쁘게 해주게 된다.
에이든 토저의 ‘예배인가 쇼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