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말씀하시는가 회개를 말씀하시는가
마태복음 12장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잘 아시는대로 기독교 신학 중에는 예정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정론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극단적인 것은 사람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꽤 극단적인 이야기 같지만 예정론도 나름대로 성경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신학이고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많은 역사에 기록된 많은 주님의 종들이 예정론자였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문제는 신학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장 잘못된 예정론자들은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고 주장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사는 길’이 아니라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자식에게 이만큼 긴 편지를 썼다고 해봅시다. 이미 모든 운명이 결정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이 편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또 성경을 아는 것이 그저 지식의 문제라면 주님께서 오늘의 본문처럼 말씀에 대해서 그렇게 강조하실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수도 없이 읽었고 거기에 관한 설교도 교회에 출석한 년 수보다는 더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어떻게 삶에 적용하십니까? 이것이 우리의 신앙을 결정지어 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길가이고 길가로 살다가 길가로 죽을 것이고 돌짝밭, 가시밭, 옥토 다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현재 자기의 마음이 어떤 상태이든지 옥토가 되려고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길가는 어떤 사람입니까?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깨달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지혜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건성으로 듣고 그 마음에 품고 생각하는 일은 더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말씀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길가가 옥토가 되려면 우선 말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루에 정해놓은 말씀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그 읽는 말씀을 마음에 두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묵상해야 합니다. 이것은말씀에 사로잡혀서 그렇게 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힘써야 하는 일입니다.
돌짝밭은 어떤 마음입니까? 말씀이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마음입니다. 일단 말씀을 받기는 하지만 세상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자기의 욕심들이 돌맹이와 같이 깨지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말씀이 인격이 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자기가 말씀을 들을 때 반발이 많이 생기고 “저건 너무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이야” 또는 “그렇게 살면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어?” “이렇게 살면 나만 손해잖아?” 등의 생각이 든다면 자신의 마음이 돌짝밭이 아닌지 강하게 의심해 봐야 합니다.
성경은 이런 것을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견고한 진이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 살아계신 것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받아들였다고 하면서도 이 견고한 진이 무너지지 않은 채로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인 삶이 말씀의 지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가고 싶지만 말씀대로는 살고 싶지 않은 사람,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지만 자기가 동의하는 말씀만 받아들이는 마음이 바로 돌짝밭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시대와 장소를 넘어 언제나 진리이며, 온전히 말씀대로 살지는 못하더라도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고 말씀으로 자기 생각을 죽여야 합니다.
가시밭은 주님께서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복음의 모든 계명을 진리로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어떤 계명에도 자기 생각을 가지고 토를 달지는 않지만 여러가지 세상의 욕심과 걱정들에 말씀의 결실을 맺지 못하게 방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열심은 있지만 믿음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다 이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 가시덤불을 다른 말로 바꾸면 핑계거리입니다. “나는 열심히 하고 싶지만 배우자가 도와주지 않습니다.” “일을 해야 합니다” 등의 문제가 다 가시덤불입니다.
알아야 할 것은 주님 앞에서는 이런 것들이 열매 없는 것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매정하셔서가 아닙니다.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위해서는 이 핑계들을 다 이기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없는 것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길을 부숴서 밭으로 만드는 것은 아예 용도를 변경하는 일입니다. 돌짝밭을 갈아서 옥토로 만들려면 뼈가 부서지는 아픔을 감내해야 합니다. 가시덤불을 걷어내려면 손에 피를 흘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고난의 열매는 영원히 달콤합니다.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먹고 살려고, 또는 꿈을 이루려고 하는 노력도 이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정말 영원히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믿는다면, 정말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나의 진실한 꿈이라면 이런 고난쯤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한 말씀이라도 마음에 담고 묵상합시다. 말씀을 믿으려 할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발심이 무엇인지 찾아 제거합시다.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내 마음을 두렵게 만드는 걱정거리들을 찾아 조금이라도 싸워봅시다. 그렇게 기도하며 길을 갈아 엎고 돌을 부수고 가시덤불을 걷어냅시다. 길가도 돌짝밭도 가시밭도 언젠가는 옥토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결실하여 주님 앞에 나가는 옥토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항상 말씀을 품고 묵상하게 하소서
- 진리를 대적하는 내 마음의 고집과 의심들을 찾아 부수게 하소서
- 진리를 따라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환경의 요소들을 이길 힘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