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기적
로마서 16장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신 은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죄사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주홍빛 같은 죄가 눈같이 희어졌다는 사실! 우리는 나서부터 여지껏 죄 가운데 살았고 그 죄를 씻기 위해서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는데, 우리의 불법이 사하심을 받고 하나님 앞에 옳다 여김을 받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 은혜가 강하게 우리를 붙잡을 때, 환경은 변한 것이 없는데도 삶에서 빛이 나고 생명의 향기가 강하게 풍깁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영생을 거저 얻은 것이 너무나 생생하게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 은혜가 힘을 잃으면 (사실은 은혜가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잃은 것이지만), 내 삶에 부족한 것만 보이고 세상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고 마음과 입에서 불평과 불만이 나옵니다.
이런 불만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처음 은혜를 받았을 때는 그렇게 선명하고 충만하게 느껴지던 주님의 임재가 조금씩 세상에 한 눈을 팔면서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만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영감이 부족해서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지금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감각과 믿음의 차이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느끼지 못하니 주님께서 나를 떠나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감각을 의지하는 판단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으니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더라도 지금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삶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그 선포는 바로 말씀의 순종입니다.
그렇게 선포할 때에 당장은 내 삶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지만 그 결과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열두 지파의 대표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했습니다. 그들이라고 왜 눈이 없었겠습니까? 가나안의 아낙 자손들이 자기들의 실력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사실을 왜 몰랐겠습니까?
그러나 그 거인들이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에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와와 갈렙은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그 믿음을 주장했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에 맞을 뻔 했습니다. 반면에 나머지 열 정탐꾼들은 보이는 것을 믿고 그대로 말해서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을 따른 두 사람만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랍고 두려운 사실인지 묵상하고 또 묵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당연한 것이 세상에서는 말이 안되는 일이 되고 세상에서 당연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불신앙의 죄가 됩니다. 만약 이것이 이방민족의 이야기였다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돌에 맞아 죽었을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포기하고 뒤로 돌아 다른 땅을 찾아 떠나는 것이 맞는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께서 당시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애굽의 군대를 홍해에서 몰살시키시면서 그들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니다. 그런데 이미 그 놀라운 이적을 눈으로 본 그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했고 그 결과 그들은 약속을 받았지만 이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들과 똑같은 선택의 기회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기회이면서 동시에 시험입니다. 환경이 어려울 때 믿음의 선택을 하면 큰 복을 받는 기회가 되지만 잘못된 선택을 하면 믿음이 후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제가 생각해도 소망이 보이지 않는 환경 중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클수록 기회도 커집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절망할 만한 환경에서 믿음을 주장한 두 사람이 모세와 아론보다 더 큰 복을 받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감각이 뭐라고 말하든 이것은 주님의 약속이니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분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지신 분이시고 우리의 모든 괴로움과 죄를 십자가를 지고 대신 해결해 주신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죄사함이 은혜인 것은 맞지만 그 은혜의 목적은 영원히 고통과 눈물이 없는 그 나라입니다. 현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그 나라를 바라는 것은 하늘의 소망이 아니라 현실의 도피입니다. 그런 사람은 땅의 일이 조금만 잘 되어도 금방 하늘의 소망을 뒷전으로 놓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천국의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유입니다.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의 축복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약속입니다. 오늘도 이 약속을 온전히 붙잡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우리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밝게 빛나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 주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고 눈으로 보지 못해도 믿음으로 기뻐하게 하소서
- 똑같은 환경에서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믿음의 눈과 능력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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