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마 5:1-12
기독교의 관심사는 온통 이생의 삶을 복음의 빛에 비추어 관찰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불행은 어떤 특정한 죄가 밖으로 나타나는 것에 있지 않고 죄 자체에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세상의 형편과 전쟁의 위협으로 근심한다면 이와 같은 재난을 피할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지금 우리가 살피고 있는 이 말씀을 고찰해 보는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즉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라는 말씀 말입니다. 만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을 안다면 전쟁의 위협은 사라질 것입니다. 참된 평화의 길은 오직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살피는 대신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며 하나님의 시간을 허다하게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인류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을 알았다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그의 고통을 제가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면 그는 매우 서투른 의사일 것입니다. 그의 기본의무는 고통의 원인을 발견하여 치료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고통의 궁극적인 치료법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지 고통을 치료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없애면 환자가 건강한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썽의 원인은 아직 거기에 있습니다.
세상이 저지르고 있는 어리석음도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은 말하기를 “나는 고통을 제거하고 싶다. 그러므로 나의 고통을 잊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슨 일이든 불사하겠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고통과 불행과 비참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있습니다. 행복과 복에 주리고 목마는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만 배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는 그들이 찾기는 찾되 찾을 수 없는 것 곧 어떤 유의 행복과 복을 찾으면서 한평생을 보내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이 모임 저 모임으로 다니며 이 놀라운 것 곧 그들에게 기쁨을 채워주며 황홀감을 채워줄 체험을 얻어보려 소원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얻지 못합니다. 참으로 행복하고 복되려면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복이나 행복이나 체험을 첫째 자리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의를 구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십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산성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