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빚어지는 성품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 더하라(벧후 1:5,7)
 
베드로는 당신이 신의 성품을 물려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제 마음을 모아 경건의 습관을 만들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더하라”의 대상은 성품을 의미합니다.
 
그 누구도 자연적으로나 초자연적으로나 성품이 완성된 가운데 태어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성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습관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넣으신 새 생명을 근거로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완벽함과 눈부심을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기이함을 드러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매일 되풀이되는 단조로움이 우리의 성품을 결정하는 시금석입니다. 영적인 삶의 가장 큰 장애는 뭔가 큰일을 찾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수건을 가져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아무 조명도 받지 못하고 신나는 일도 없으며 매일 일상적인 똑같은 일만 반복되는 그러한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간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많이 빚으시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당신에게 신나는 순간들을 주실 것으로 기대하지 마십시오. 되풀이되는 따분한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성품이 자라나도록 공급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말로는 하나님께서 안락한 꽃 침대 위에서 우리를 하늘로 데리고 가실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행동은 그러한 하나님을 바라며 살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서 주님께 순종해 보십시오. 그 순종 뒤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전능하신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의무 때문에 억지로 순종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상황을 연출하신다는 것을 믿고 나의 할 바를 행하십시오.

제가 전화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수련회에 참석해서 주말까지 말씀을 보내지 못합니다.
 
그러면 순종하는 즉시 속죄를 통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그 엄청난 은혜가 나의 것이 됩니다.

Related Articles

일상 속에서 빚어지는 성품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 더하라(벧후 1:5,7) 베드로는 당신이 신의 성품을 물려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제 마음을 모아 경건의 습관을 만들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더하라”의…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 더하라(벧후 1:5,7)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 더하라(벧후 1:5,7) 베드로는 당신이 신의 성품을 물려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제 마음을 모아 경건의 습관을 만들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더하라”의 대상은…

순종의 딜레마

삼상 3:15 “사무엘이 …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하나님은 깜짝 놀랄만한 방법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음성이 정말로 하나님의 음성인가”하고 의아해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강한 손으로”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곧 섭리를 통하여 강권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만지시는 분은 다름 아닌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분이십니다. 당신은 발생하는 상황을 우연으로 봅니까? 아니면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분변합니까? “주님, 말씀하소서”라고 말하는 습관을 길러 보십시오. 그러면 인생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연주곡이 될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마다 “주님, 말씀하소서”라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주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만드십시오.  경책은 징계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즉 경책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 말씀하소서”라고 고백하는 자리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잊으셨나요? 누가복음 11:13절이었는지 아니면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이었는지 헷갈리나요? 주의 음성을 들으면서 우리의 귀는 예리하여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항상 들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신 것을 나의 “엘리 제사장”에게 말해야 하는 것일까요? 바로 이 부분이 순~종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딜레마에 빠지는 부분입니다. 나는 내게 가장 가까운 “엘리 제사장”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하다가 하나님을 불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엘리에게 말하라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그 문제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습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쩌면 당신의 “엘리 제사장”에게 아픔을 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삶의 고통을 막으려다가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방치해물을 놓을 수도 있습니다. 오른 손을 잘라내지 않고 눈을 뽑으려 하지 않다가 당신의 생명마저 잃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결정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에 대하여 다른 사람의 조언을 얻으려 하지 마십시오. 만일 조언을 얻으려 하면 당신은 거의 언제나 사탄의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 중에서

끝없이 지루하고 힘든 상황 가운데

고후 6: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더 이상 비전도 없고 소망도 없는 가운데서 그 다음 단계를 향하여 나아가기 위하여는 전능자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비전도 없고 그래서 열정도 전망도 없을 때, 헌신에 있어서, 연구에 있어서, 읽는데 있어서, 주부의 부엌일을 하는데 있어서, 책임에 있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더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를 향하여 나아가기 위하여는, 복음을 선포할 때보다 더 많은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육신의 근본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성육신의 근본이 그들의 살과 피가 활동하는 영역으로 나타나도록 하여야 하고, 그들의 손길을 통해서 성육신의 근본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역자 주 – 챔버스에게 있어서 성육신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역사적인 성육신과 각 개인에게 성령을 통하여 나타나는 성육신, 곧 거듭남이 있습니다. 챔버스는 이 간단한 한 구절로 구속과 거듭남을 성육신의 근본에 다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비전이 없고 활기가 없고 오직 매일 되풀이 되는 지루한 일들만 있을 때 우리는 백기를 흔들어 항복을 표합니다. 그러나 성육신의 근본을 적용하는 자는 끝까지 인내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사람을 위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꾸준하게 인내하는 것입니다. 짓눌리지 않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당신의 눈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언제나 고정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일들이라도 결코 당신을 지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조잡하고 소심한 마음과 생각에서 벗어나십시오.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요한복음 13장을 묵상하십시오

믿음으로 침노하는 천국

믿음으로 침노하는 천국(본문을 꼭 읽으세요) 여호수아 14: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