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다물고 눈물과 무릎으로
로마서 3장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맞닥뜨리게 되는 심판의 자리는 모든 사람의 입이 다물어지는 자리입니다. 아무도 자기의 죄에 대해 세상에서 하던 대로 핑계를 대지 못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산 사람은 감사의 찬양을 그렇지 않았던 사람은 탄식과 통곡만 할 수 있는 자리가 심판의 자리입니다.
율법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입을 막고 지금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해서 나중에 영원한 심판을 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악한 성품 중의 하나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말만 할 줄 알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때 쉽게 시인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말을 잘해서 명백한 잘못을 잘못이 아닌 것처럼 만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성경을 가지고 온갖 거짓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대의 주류신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법을 바꿀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에게는 죄가 잊혀져 가고, 죄의 악취가 옅어져 가지만 하나님 앞에 죄는 표범의 얼룩과 같이 그 자리에 영원히 있습니다.
이 죄의 심각성을 알도록 율법을 주셨고 그 이전에 사람의 마음에 양심을 주신 것입니다. 입을 다물게 한다는 것은 두려움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검은 색이 흰색과 다른 것처럼 자신의 죄가 하나님의 의에서 멀어진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가는 곳마다 cctv가 있어서 아무리 자기가 아니라고 우기는 범죄자들도 범죄가 녹화된 영상을 보면 아무말 하지 않고 죄를 자백하는 것처럼, 심판대 앞에 서면 한 마디도 변명할 수 없도록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납니다.
그 때 그 사람의 행위를 비추어 보는 법이 율법입니다. 빨간 신호를 지나가면 딱지를 줄 수 있는 이유는 교통법규에 빨간 신호에는 반드시 정지해야 한다는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근거도 율법에 있는 것입니다.
2장에서 살펴본 대로 율법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양심을 새겨 놓으셔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양심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자신의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두려움에 가득차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은혜이고 그 은혜를 받으면 그의 일생은 완전히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 중에 몇 명이나 될까요? 저도 죄를 알기도 전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구원인 줄 알았기 때문에 죄를 짓는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아마 많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전의 저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적당한 유머감각을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인품중의 하나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진지해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끼리는 말 한 마디로 천 냥 빛을 갚고 심각한 상황도 적절한 농담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진노는 이런 가벼움이 없이 진지함으로 가득합니다. 에배소서 5장 4절에 보면 성도의 삶에 “누추함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않다”고 했는데 희롱의 말에 사용된 원문의 단어에는 유머라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 유쾌한 것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하나님 앞에는 오직 진지해야 합니다. 그것을 숨막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의 악에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이렇게 율법의 정죄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율법을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와 회개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면 정죄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잘못을 드러내서 주눅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설교를 통해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하게 해서 유쾌하게 되는 일이 목적이면 그것이 참 은혜입니다.
죽을 병에서 살아난 사람이 건강한 것에 감사하듯이 깊은 두려움에 빠져 본 사람이 더 온전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죄의 더러움을 깊이 느껴본 사람만이 그 죄를 씻으신 주님의 희생의 사랑을 더 깊이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단계를 건너 뛴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점점 더 오리무중이 되어가고 교회들은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게되면 자신의 더러움이 보이게 됩니다. 반대로 자신의 더러움을 보게 되어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나의 더러움의 차이가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만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크게 느껴집니다. 율법 앞에 서서 입을 다물고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날마다 은혜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죄의 절망이 생명의 소망이 되는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2. 말로만 회개하는 데서 벗어나 눈물과 무릎으로 삶을 고치는 회개로 변화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