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돌아보며 살라
시편 39편 3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아시는대로 저는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모든 것이 상업화 되면서 음악계전반이 예술적으로는 퇴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악을 제외한 다른 분야는 적어도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발전하고 있지만 성악만은 기술적인 측면이 가장 퇴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신체적인 구조의 문제 때문입니다.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너무 어색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자기의 목소리를 귀 안쪽에서도 듣기 때문입니다.
귀를 막으면 자기 목소리만은 더 크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성악가는 프로가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학생 때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주일 내내 선생님과 같이 지내도 대가다운 대가가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학기 중에만 레슨을 받습니다.
그러니 대가다운 대가는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 성악가 중에서는 군계일학입니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없으니 그 자부심은 하늘을 찌릅니다.
서론이 장황했지만 신앙인들도 이런 오류에 빠지기가 너무 쉽습니다. 자기 삶이 경제적으로 풍성하고 가정과 직장에 눈에 띄는 문제가 없으면 자기가 든든히 섰다고 생각합니다. 또 워낙 교회 다니는 분들의 믿음이 바닥이다보니 조금만 열심을 내도 자기가 굉장한 믿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것들은 다 허사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것들은 자기의 상태를 평가할 기준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고 그 뒤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소망을 오직 주께 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소망하는 것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소망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사람들입니다.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세상의 소망을 하나님을 이용해서 쫓고 있으면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합니다. 바른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한다는 것은 그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어떻게 보실 것인지만 생각하는 것이 그의 삶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저도 이렇게 되기를 원하고 성도들에게서도 이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려면 성악선생님이 그 학생들에게 틀린 점을 지적하듯이 사랑으로 서로에게 권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적해줄 준비 말고 난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한계를 스스로 깨닫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살면서 귀를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의 말씀처럼 자기의 삶이 허사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허사를 좇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자랄 수 있습니다.
칭찬을 듣고 자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아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칭찬보다 비방을 귀 기울여 들이십시오. 하루종일 자기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보십시오. 곱씹으십시오. 자기 안에 뭐가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자아가 아니라 믿음이 자라는 성도가 됩시다.
1. 칭찬보다 비방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2. 자기 언행심사를 날마다 살피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