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라 (2)
온 마음이 구원에 가 있는가
히브리서 2장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성경을 통해 자기 믿음을 점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는 자신이 얼마나 구원에 온 마음을 두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경의 모든 것이 우리의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땅에서 잘 살아야 80년을 살고 죽으면 끝이라고 믿던 사람이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온 마음을 집중하지 않고 오늘 히브리 기자의 표현대로 그것을 등한히 한다면 그 믿음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불로초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보내 천하를 다니며 불로초를 찾게 하는데 막대한 투자를 했습니다. 서복이라는 사람에게 무쳐 3000명의 사람을 붙여서 불로초를 찾게 했는데 이 사람이 제주도에까지 다녀갔다는 역사적인 증거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불로초를 찾으러 떠난 신하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자 진시황은 의사들에게 불로불사의 약을 만들어내라고 강요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들이 만들어낸 약에는 수은이 다량 함유되어 그것을 먹고 중독되어 50세에 죽었다고 합니다.
진시황제 뿐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이상의 부와 권력을 쥐게 된 사람들은 다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아 헤맸습니다. 전도서 3장 11절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속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을 믿게 된 사람이 그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은 그 믿음에 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가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말한 것은 성도들에게 한 것입니다. 왜일까요? 아무리 거듭난 성도라도 마음을 빼앗기면 구원을 등한히 여길 수 있기 때문이고 그러면 흘러 떠내려가 구원에 안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째, 구원을 이미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구원 받아서 더 이상 할 것이 없으니 당연히 등한히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의 문제를 따지기 전에 예루살렘 성 안과 바깥 어두운 곳만 비교해도 우리는 구원의 문제를 등한히 할 수 없습니다. 성 안은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기쁨을 감당하지 못해서 주님을 찬양하는 함성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반면에 바깥 어두운 곳은 손 발이 묶이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다 못해 이를 갈게 되는 곳입니다.
이곳을 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에 힘써야 합니다. 받은 달란트를 남기려고 힘써야 하고(마25:20), 예복을 입으려고 힘써야 합니다.(마22:12) 달란트를 남긴다는 것은 어떻게든 주께 받음 믿음을 따라 살아 열매 맺는 삶을 말하는 것이고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은 성품을 가지도록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파라는 이단이 왜 생기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구원을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지만 한 번 구원 받은 사람은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므로 순종과 성화를 필요조건에서 충분조건으로 격하시켰습니다.
순종과 성화를 부인하지 않는 것 같지만 구원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그 말을 믿는 성도들은 굳이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순종 없이 천국만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구원파가 생긴 것입니다.
한 번 구원 받으면 지옥은 면한다고 쳐도 바깥 어두운 곳에 가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면 순종과 성화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정말 믿는다면 누구도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이유는 실제로 세상과 영생 중에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네 물질도 있느니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자기가 사랑하는 곳에 시간을 쏟고 물질을 쏟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현대 스포츠는 과학과 정보를 중요시 합니다. 그래서 한 선수의 모든 활동을 데이터화 해서 현재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감독은 최근의 성적을 가지고 당일 경기의 출전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 시스템이 도입된지 20여년 밖에 안 되었지만 거의 모든 스포츠는 다 이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왜일까요?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최근의 기록이 그 사람이 오늘 뛸 만한 선수라는 증거란느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구원에 모든 것을 거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환경 탓을 하면서 자기 신앙의 문제점을 작은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합니다. “요즘 너무 바빠서” 라는 말은 자신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스스로 인정하는 말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에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주님의 일이 바빠서 세상을 뒷전으로 두는 것이 증거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조금 더 기도하고 조금 더 말씀을 묵상하고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하려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전도가 힘들면 가족간에라도 복음의 은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집중하는 삶을 살자는 말입니다.
저절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마음이 가면 저절로 되는 것처럼 몸이 가게 되어 있을 뿐입니다. 오늘도 내 마음이 구원에 집중되어 있는지 살펴보아 자기의 믿음을 확인하고 새롭게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내 마음이 구원에 온전히 집중되게 하소서
- 세상을 사랑해서 구원을 상대적으로 등한히 여기지 않게 하시고 세상 때문에 신앙이 영향을 받지 않고 내 신앙 때문에 세상의 일이 영향을 받는 성도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