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

겨레의 명절인 설날이 다가온다. 그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여러 봉사자들과 함께 노숙인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는 나는 그 해 설날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노숙인들이 맛있는 떡국을 먹을 수 있었으면’ 하고 며칠 전부터 조바심이 났다. 그들도 명절을 느끼고 겨레의 큰 잔치를 즐거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주님! 이번 설날에는 노숙인들도 떡국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 이것은 그저 나만의 바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주님도 그들에게 가족과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설날을 주고 싶으셨나보다. 이틀 전 어떤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손자의 돌잔치가 마침 설날이라면서 주님이 기뻐하는 잔치가 되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손자인 예준이의 돌잔치를 집에서 하지 않고 잔치 비용을 노숙인들을 위해서 쓰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예준이의 돌잔치는 수많은 노숙인들에게 설날을 느끼게 했고 그들에게 따뜻한 떡국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는 예준이의 이름으로 송금된 돈으로 마장동에 가서 소뼈와 소고기를 샀다.

또 떡집에서 설날에 팔려고 미리 준비해 놓은 떡국 전량을 샀다. 나는 밤에 소뼈를 우려내어 육수를 만들고 소고기로 고명을 만들었다. 새서울 교회 유 집사님은 계란 지단과 김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렇게 우리 여러 사람의 마음이 녹아든 떡국은 생각만 해도 맛있을 것 같았다.

그들에게 줄 음식이 가득히 실린 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하는데 너무 기뻐서 입에서는 찬양이 나왔고 몸이 저절로 들썩거렸다. 음식을 준비하느라 밤을 새웠지만 조금도 피곤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우리는 떡국을 내 부모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준비하였다. 그랬더니 예배를 마치고 떡국 한 그릇씩을 받아 든 그들은 연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 떡국은 난생 처음이야!”

어떤 이는 떡국을 앞에 놓고 한 입도 먹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기도 했다. 수염에 콧물이 얼어붙은 채로, 이가 다 빠진 채로 우리를 쳐다보며 가장 맛있다고 칭찬하며 웃어주는 그들을 보면 나는 너무 행복해서 한껏 들뜬 어린아이가 된다.

“내일은 예준이의 돌찬치예요. 여러분들이 다 와서 함께 먹으며 예준이의 돌잔치를 축하해 주세요!”

나는 오늘 밤 쵸코파이로 예준이의 생일케익을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예준이에게 돌잔치 이야기를 자세히 써서 예준이의 생일선물로 주려고 한다. 예준이가 어른이 되면 자신의 돌잔치는 구름같이 많은 서울역 노숙인들과 함께 나누었음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훨씬 더 맛있게 떡국을 끓일 수 있을 것 같다. 이 밤에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장만할 테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 한 사람 먹을 것을 천명과 나누어 먹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천 명이 먹을 것을 자기 한 입에 먹는 사람이 있다. 예준이의 돌잔치를 시작으로 앞으로 수많은 잔치가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행복한 잔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유정옥 사모의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자기 한 사람 먹을 것을 천명과 나누어 먹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천 명이 먹을 것을 자기 한 입에 먹는 사람이 있다.

이 부분을 여러 읽어 보고 자신은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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