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복음서 전체에 주님께서 사람에게 이 ‘온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단 두 번입니다. 하나는 부자청년에게 마태복음 19장 21절에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신 것과 오늘 본문입니다.

이 단어는 보시는 대로 하나님에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사용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를 행할 수 있다면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같이 완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뭐라고 이유를 대도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물질의 욕심 때문입니다. 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만 바라고는 못 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원하지 않는 고난을 당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온전한 성도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죠지 뮬러 목사님이 바로 그 좋은 예입니다.

그의 주머니는 언제나 풍성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쓸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아원과 성경 보급, 그리고 선교사님 지원이라는 세 가지 사역을 했는데 다 큰 돈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돈을 모으지 않았던 그가 일평생 사용한 돈의 액수는 지금 가치로 따지면 1조원에 가깝습니다. 그보다 더 큰 것은 그가 하늘에서 받을 상급입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면 말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온전함은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든 그 사람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한 사람들을 위해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처럼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우면 이것이 되면 하나님과 같이 온전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또 우리는 쉽게 부자청년이 물질의 미련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혀를 차지만 그 같은 주님의 질문이 우리에게도 주어진다면 그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신앙인이 되는 것을 아름다운 도전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에게는 불편한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되면 좋고 안 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가치있는 것들이 그렇듯이 주님의 말씀도 들을 때는 아름답지만 순종하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더구나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과 같이 온전해질 수 있는 명령들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혹시라도 이 말씀에 큰 목소리로 아멘을 했다거나 자기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는 것을 순종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말씀에 담긴 복은 순종해야 자기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 예전에 순종한 경험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융자로 집을 샀습니다. 지난 달까지 빠지지 않고 융자금을 갚았어도 이번 달에 갚지 않으면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처럼 주님의 말씀은 오늘 순종하고 있어야 지난 날의 순종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 심지어 그 모든 것 뒤에 숨어있는 의도까지 낱낱이 파헤쳐질 것입니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믿고 준비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말이 서운해서 아직도 그 사람에게 상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 내게 보였던 악의 때문에 지금도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까?

그 때 오늘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내가 주님께 어떻게 했는지, 그런 내게 주님은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를 생각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서 내 죄를 보는 사람이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지은 죄가 다른 사람의 죄보다 커보이는 사람이 주님 앞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하는 어떤 일도 잘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오직 주님 앞에 벌거벗고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자기를 괴롭게 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주님의 축복의 명령에 순종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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