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의 회전목마

미칠 듯이 돌아가는 음란의 회전목마를 타겠다고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악의 구렁텅이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윤리의식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섹스는 정말 달콤한 유혹이다. 이토록 달콤한 유혹에 절어 있는데 어떻게 선을 행할 생각이 들겠는가? 신학자들이 말하는 영원에 투자하느니 차라리 성적 쾌락에 투자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영악한 계산이다.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알코올에 절어 쇠약하고 성욕의 풍랑에 이리저리 질질 끌려 다니는 이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탄식은 바로 바이런(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죽은 영국 시인)의 탄식일 것이다.

전에는 불에 활활 탔으나
이제는 재만 남았구나!
내 몸 안의 영혼은 죽었다
전에는 사랑하며 즐기던 것을
이제는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내 마음도 내 머리칼처럼
잿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나이들어 더이상 쾌락을 좇아 살 수 없을 때 쓴 시)

만일 교회가 활력과 승리로 가득한 삶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낮에는 골프 클럽을 찾고 밤에는 나이트클럽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교회로 향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유롭고 편하게 살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안락하고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이 독재치하에서 고생을 해봐야 주님의 길과 하나님의 아들을 찾을 것인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몸은 자유로우나 영혼이 속박당하는 것보다는 몸은 속박당해 있지만 영혼이 자유로운 것이 훨씬 낫다.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했던가! 마차가 트럭으로 항공모함이 인공위성으로 바뀌는 발전은 그야말로 천 년이 하루처럼 느껴질 만큼 신속히 이루어졌다.

땅 속을 뚫어서 원유를 찾아내고 심지어 바다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볼 때 과학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보고 넋을 잃은 사람들이 과학에는 열광하나 기독교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그들의 눈에는 과학이 신적인 존재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복음의 열정으로 불타는 마음, 입을 벌려 복음을 전하는 입술 그리고 중보기도로 눈물이 마를 날 없는 두 눈이 필요하다.

독실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앞에서 우는 것만큼 우리가 기도의 골방에서 운다면, 부흥의 불길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라 더러운 것들을 전부 태워버릴 것이다.

레너드 레븐힐의 ‘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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