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 말라

사도행전 20장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아무리 묵상을 하고 묵상을 해도 이 말씀이 사도행전에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것은 “설교 시간에 졸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설마 사람들이 졸릴지 모르니 설교를 너무 길게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20세기 최고의 설교자를 꼽으라면 언제나 수위를 다투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설교라는 사실을 항상 강조했습니다. 그 근거는 방금 말한 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로마서의 말씀이었습니다.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 설교라면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도 설교를 잘 듣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현대 교회의 예배는 너무 설교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고 불만 섞인 말을 합니다만 사실 설교는 광야 이스라엘 때부터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임에는 언제나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시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동네의 회당마다 들어가셔서 복음을 전하신 것과 바울도 같은 일을 한 것은 유대교 회당의 안식일 예배에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전통을 이어받아 교회의 모임도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각 시대마다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던 설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카톨릭 암흑기에는 그 명맥이 끊어진 것 같았지만 19세기 영국의 찰스 스펄전이나 20세기의 마틴 로이드 존스 같은 사람들은 설교 하나로 굉장한 열매를 거둔 주님의 종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에게 설교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유두고라는 청년에게도 할 말은 많을 것입니다. 낮에 힘들게 일하고 요즘으로 말하면 저녁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요즘처럼 조명이 잘 되어있는 것도 아니어서 등불을 잔뜩 켜놓았는데 그 열기가 자기가 앉아 있는 윗층으로 다 몰렸습니다.

바울은 “밤중까지 계속했다”는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아마 이른 저녁부터 설교를 시작해서 밤중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9절은 거기서 “강론하기를 더 오래 했다” 고 말합니다. 아마 너끈히 서너 시간은 한 것으로 보이고 그보다 더 길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청년이 졸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주님께서도 바울을 통해 이 청년을 다시 살리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잘못한 것도 있습니다.

바울은 이 날 저녁이 지나면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언제 다시 이들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바울은 온 마음을 다해 자기가 아는 복음을 하나라도 더 전하려고  온 힘을 다했습니다.

정말 유두고가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사도 중의 한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들으려는 자세가 있었어야 합니다.

어떤 미국 선교사님이 중국의 가정 교회 지도자들을 놓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동안 성경을 가르친 사람들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것만을 가르쳤습니다.

이 선교사님이 준비한 것을 다 가르치자 이들은 신약성경 전체를 다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신약성경이 끝나자 구약성경도 그렇게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렇게 이 선교사님은 장장 한 달여에 걸쳐서 성경 전체를 가르쳤는데 좁고 어두운 방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세도 불편한 환경인데도 이 가정교회 지도자들은 그 오랜 기간 동안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말씀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들 중에는 이 성경공부를 위해 며칠씩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도 있었고 농번기에 농사를 뒤로하고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육신의 것을 희생하니 하나님의 말씀이 다르게 들렸던 것입니다.

또 유두고는 높은 곳의 창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된 것처럼 떨어진다면 충분히 죽을 수 있는 높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위험을 무시한 채 졸음이 오는 대로 잠을 잔 것입니다.

성도는 영적으로 이 다락방 창에 걸터앉아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죽으려고 마음을 먹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그 위험을 잊어버리고 마음을 놓고 있으면 그 영혼은 큰 시험이 빠질 수도 있고 주님께로부터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성도가 바른 길을 가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일과 설교자의 입술을 통해 그 때 그 때 필요한 메세지를 주시는 것을 잘 받고 순종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일입니다.

항상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준비하여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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