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3: 6-11

사도행전 6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성경을 바로 아는 것은 바른 믿음을 가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제가 ‘바른 믿음을 가지는 데 있어서’라고 한 것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제대로 믿으려고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제대로 믿으려는 사람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과 성경을 학문이나 지식으로 대하는 사람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은 음식의 사진을 보는 것과 먹는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이 분쟁의 주역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던 그들의 논쟁은 영의 존재와 부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시는대로 여기에는 분명히 승자가 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이 하는 말이 맞는 것과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을 하신 무리들입니다. 독사의 자식이라는 말은 마귀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이들에게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이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대해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지간 한 성도는 누구라도 말은 얼마든지 멀쩡하게 할 수 있습니다. 수십 년간 보고 들은 것이 있는데 왜 할 말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그것과 영생을 얻는 구원과는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하는 말이 옳으면 믿음도 옳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중인격자’,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라는 말처럼 말과 그 실제가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성경은 살려는 자들을 위해 주신 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에는 논쟁도 유익합니다. 그래서 좀 지혜롭게 논쟁하는 것에 대해 좀 설명하려고 합니다.

신학을 배워보면 의미없는 논쟁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도 유대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천사가 저울 위에 올라 앉으면 얼마의 무게가 나가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논쟁을 보세요. 영이 있는지 부활이 있는지 논쟁하고 있지만 부활이 있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들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부활과 가장 관계가 없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우리도 가끔 이런 미련함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것은 예수님 재림 때 있을 천년왕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부연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 이야기는 가장 영광스러운 부활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나 상관 있는 이야기이고 그 부활에 동참하는 것과 이것을 제대로 아는 지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도 주님을 따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지식이 제대로 서야 나머지 지식들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해야 할 일은 오직 바른 길을 가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도에게 필요한 지식은 바른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지식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자기들이 왜 그 자리에 모였는지도 모르면서 싸우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의 싸움은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여기시고 바울에게 그가 곧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것을 알려 주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이런 논쟁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왜일까요? 주님은 그런 논쟁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그 모든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성경은 무엇이 죄인지 어떻게 그 죄를 씻으며 어떻게 그 죄와 싸우는지에 관한 지식이고 더 나아가서 어떻게 하면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신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지를 아는 지식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아무 관심도 두지 않으시는 의미없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논쟁이 아니라 순종, 지식이 아니라 생명에 모든 관심을 두고 생명의 부활을 향해 달려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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