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도 없으니 어쩌냐

우리 부부는 아침식사 후 동부간선 도로 밑 하천가를 산책한다. 장마 때만 되면 상습적으로 범람 위기에 처하는 월릉교 근방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물이 많지 않은 건천에 가깝다.

군자교 밑에서 의정부 근처까지 주민들을 위한 긴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옆에는 줄지어 달리는 자동차 행렬에서 내뿜는 매연이, 하천에서는 생활 폐수가 흐르지만 딱히 갈 곳이 없는 서울 시민들은 그런 곳이나마 감지덕지하며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유일하게 흙을 밟을 수 있는 곳이니 다행이다.

우리 부부는 중년의 무거워지는 몸 때문에 운동을 할 마음으로 이 곳에 오지만 나에게는 운동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수십 마리의 비둘기들 때문이다. 집에서 먹다 남은 빵이나 라면 부스러기를 절구에 빻기만 하면 얘들에게는 맛있는 먹이가 된다.

얘들은 마음도 참 예쁘다. 혼자 먹지 않고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어 하루하루 모이는 숫자가 늘어난다. 처음에는 lKm 정도 걷고 난 곳에서 먹이를 주었는데, 지금은 2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또 한 번 나누어 준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때는 내가 준 것에 대해 갚을 길이 없는 자에게 주어야 한다. 그러나 비둘기 갈은 미물들도 내가 준 것보다 항상 많은 것으로 되돌려 준다. 우선 운동하러 나가기 싫은 날, 나를 기 다리고 있을 비둘기 때문에 꼭 나가게 되니까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또 아무리 걷기 싫어도 최소한 왕복 4Km는 걷게 만든 다. 또 비둘기에게 먹이를 줄 때 남편은 은근히 내 아내는 착한 아내라고 감동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어떤 유익보다 나 스스로 마음이 기뻐져서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준다.

우리 동네에는 생활이 곤핍하거나 지체 부자유자, 독거 노인들이 많다. 여름엔 시원한 콩국수를, 겨울엔 따끈한 칼국수를 만들어 그분 들과 점심을 같이 먹는다. 그러면 그분들이 하시는 말 속에서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들에게 숨기고 있는 아픔의 소리를 전해 들을 수 있 다.

우리에게 내색 안 하고 겪고 있는 부모님들의 외로움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이분들 중에는 저녁 잡수신 것이 체했다고,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다고 나에게 전화를 하시는 분도 있다. 어떤 분은 사시는 집을 못 찾았다고 나를 찾아오시기도 한다.

작년 12월 저녁을 준비하느라 한창 바쁠 때 한 독거 노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활명수 하나 사가지고 빨리 좀 와줘. 아이고 나 죽겠어.” 달려가 보니 그분은 방안을 기어다니고 계셨다. 얼굴에는 진땀이 흐르고…

급히 119에 연락하여 백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위급 상황인 것 같아서 노인의 주머니에 있던 아들, 딸들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을 했다. 3시간이 지나도 네 명의 자녀 중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는 ‘저 분이 내 어머니라면 어떻게 할까? 에 나의 모든 행동의 기준을 두었다. 내가 보호자로서 보증을 설 테니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의사와 간호사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내 손을 잡았던 손을 늘어뜨리며 숨을 거두셨다.

의식이 있는 동안 어머니의 임종 자리에 오지 않는 아들, 딸 들 때문에 나에게 미안해서인지 “아들이 사는 곳이 여기서 멀어. 아주 멀어.” 이 말만 반복하셨다.

나는 아들의 집이 이 곳에서 30분 거리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요. 아드님이 서둘러 오고 있는 중이니 조금 만 참으세요”라고 말했다. 끝까지 자식의 허물을 덮어 주려는 어머니는 아들과 딸들을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마지막으로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몸이 아프니까 내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는 그 할머니는 나에게 무엇이 그리 고마웠는지 “고마워, 고마워”를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하시고 떠나셨다.

며칠 전 그분과 친구였던 한 할머니를 만났는데 “나는 내 친구가 부러워. 나도 죽을 때 사모님이 내 곁에 있어 줘”라고 하신다. 어떤 할아버지는 생계 보조비를 받았다고 내 목도리를 사 오셨다. 점심 한 끼에 나를 사랑해 주는 부모님이 이렇게 많아진다.

주님은 내가 준 사랑에 대해 무엇이든 갚을 길이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라고 하셨는데’, 이 세상엔 받은 사랑을 갚지 못할 사람이란 한 사람도 없으니 어쩌랴!

따뜻한 차라도 끓여서 옆집 사람을 초대해 보자. 그러면 많은 친구가 생길 것이다. 아침엔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해 드리자. 부모님이 행복해하시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노점에서 장사하는 사람에게 커피 한 잔 대접하자. 종이컵의 온기에 시린 손을 덥히는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기쁘게 할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한없이 커져 가는 것이다.

유정옥 사모님의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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