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모살이

식모라는 말은 가정부로서 요즈음은 도우미 아줌마라는 멋진 말로 바뀌었지만 내가 그 집을 갈 때는 식모라는 말이 맞는다.

나와 함께 장애인들을 돕는 일을 하던 한 성도님이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남편은 교회 이야기라고는 한마디도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요즈음엔 자신도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할머니는 만약 남편의 반대로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 자신은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다.

남편에게 누군가 예수님을 믿게 전도해 주어야 하는데 절대로 들으려고 하지 않는 남편에게 누가 감히 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유명한 목사님을 집으로 모시고 간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목사님들을 난처하게 할 만큼 단번 에 거절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나와서 들으려 하지 않으면 들어가서 전하면 되잖아요.”
할머니는 나의 의견에 눈이 둥그레지면서 “그런데 어떻게 들어가지?” 하고 물으신다.
“집사님 댁에 식모 아줌마 구한다고 했잖아요. 제가 식모로 들어갈 게요.”
“아유 사모님이 식모살이라니 웬 말이야.”
“한 달만 해볼게요.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해 전도해 볼게요.”
나는 남편에게 어렵게 허락을 받고 그 집사님 댁으로 들어갔다. 내가 그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남편에게 한 달 동안 전화도 하지 말라 고했다.
그 할아버지는 자수성가한 분으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아들 둘은 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에 유학 가 있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그들의 아파트는 두 분만 살기에는 너무 넓어 운동장 같았다. 젊은 시절을 온통 돈을 벌기 위해 다 쓰고 보니 이 젠 건강의 노예가 되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사다 놓아야 했고 다 먹어야 했다. 그래도 혹시 죽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생활이었다.

사람이라고는 할아버지, 할머니, 나까지 셋인데 방은 네 개였다. 내가 할 일은 신문을 읽어 드리는 일과 식단에 적혀 있는 대로 음식을 만드는 일, 청소, 빨래 등 그야말로 평범한 집안일이었으나 마시는 물의 온도까지 재어보는 할아버지의 까다로운 시중은 밤마다 코피가 터지는 고된 일이었다.

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저 신문을 읽고 신문에 나오는 전문을 숙지했다. 잘 모르는 전문용어는 사전을 찾아 미리 알아 놓았다. 할아버지께 신문을 읽어 드리다가 대화가 시작되면 내가 미리 준비한 것을 알길 없는 그 분은 무릎을 치면서 나의 지식에 감탄하시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구두를 반짝반짝 닦아 놓고, 현관에 나오시면 나는 앞치마에 다시 한 번 닦아 내려 놓았다.

그리고 나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두 시간씩 그분이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할아버지는 나에게 식모살이를 그만두라 고 하셨다. 할아버지 친구분 회사에 좋은 자리를 마련해 놓았으니 그 회사에 다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시중들면서 이 곳에 있는 것이 더 좋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친구들에게 나를 자랑하고 칭찬하고……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계신 것이었다. 하루는 그분의 시집간 딸이 친정에 왔다. 딸은 나를 방으로 불러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 재산 보고 우리 집에 들어온 것 아녜요? 아버지가 요즘 아줌마에게 푹 빠진 것 같아요. 아버지 말씀대로 이런 일 할 사람 같지 않은데 젊고 똑똑한 여자가 왜 아버지가 마련해 준 그 좋은 회사도 마다하고 우리 아버지 옆에 꼭 붙어 있는 거냔 말예요. 우리 아버지는 외동딸인 나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는 분이셨어요!”

그 딸은 나에게 식탁에서 밥도 먹지 못하게 하며 나를 마치 더러운 벌레같이 취급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 할아버지를 구원하기 위해 주님께서 나를 그분의 집으로 들어가게 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주님께서 나를 철저히 회개시키기 위해 그분의 집으로 들여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전혀 몰랐다. 전에 우리 집에 와 있던 식모 아줌마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하루의 고된 노동에 밤마다 코피를 쏟았다는 것을……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밤마다 베개가 젖도록 울었다는 것을, 내가 돈 몇 푼 주는 것으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산 것처럼 거만을 떨었다는 것을…… 그를 멸시하고 그에게 모멸감을 주며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심지어 구두를 닦을 때도 나의 더러운 구두를 깨끗이 닦아 주는 분의 수고에 고마워하기는 커녕 돈 천 원에 그의 주인이 된 것처럼 그를 내려다보며 온갖 투정을 다 하지 않았는가. 택시 기사는 내가 걸어야 할 곳을 차로 데려다 주는 것에 대한 대가를 받을 뿐인데 돈 천 원에 그 사람을 하인으로 산 것처럼 군림하려 했다니…….

종업원이 일하면 주인은 그가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주는 것이지 종업원 자체를 산 것이 아닌데 나는 항상 그 사람들 위에 있었다. 나는 밤마다 가슴을 찢으며 나의 교만과 무례함과 무자비함과 무정함을 용서해 달라고 주님께 간구했다.

두 주일이 지난 뒤 밤에 나는 상서로운 꿈을 꾸었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부터 소년 시절, 청년 시절, 장년 시절 등 할아버지의 일생을 꿈으로 꾼 것이다. 마침 꿈을 꾸고 난 다음날 아침에 할아버지는 나를 방으로 불러들여 왜 우리 집에 들어왔는지 정직하게 실토하라고 하셨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할아버지를 너무 사랑하셔서 구원하고 싶은데 할아버지가 하나님에 대해서 들으려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제가 들어왔어요.”

“뭐라구! 그럼 나를 예수 믿게 하려고 우리 집사람하고 짜고 들어왔단 말이야? 착하고 지혜로워서 내가 아껴 주었더니 이런 못된 것! 당장 나가!”
할아버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분을 내셨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믿음을 주시도록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 도하신 할머니의 사랑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가장 구원하고 싶어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말씀드렸다. 이 집에 들어 온 첫날부터 보름 동안 내 심정의 변화도 말씀드렸다.
그리고 어젯밤에 꾼 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것은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이었어요. 이것은 할아버지의 소년 시절이었어요. 이것은 할아버지의 청년 시절이었어요…… 내가 잔잔히 말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탁자에 머리를 숙이고 울고 계시지 않은가! 이분은 절대 우실 분이 아니다. 더구나 딸 갈은 젊은 여자 앞 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참 흐느껴 우시던 할아버지는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하늘만 아는 비밀이었어. 그러니까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 거야. 나 때문에 보름이나 식모살이를 하다니 고마워! 고마워! 이번 주부터 집사람하고 교회에 나갈게.”
할아버지의 멋진 승용차를 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한 달을 해보겠다고 작정했는데 주님이 반으로 줄여 주셨다. 할아버지는 약속 대로 할머니가 다니시는 동숭 교회에 함께 나가시게 되었다.

4개월 후인 그 해 5월 23일! 할아버지는 종로 5가에 100평의 교회를,70평의 무료 탁아소 교육관을 마련해 놓고 우리에게 목회를 하라 고 하셨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첫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 와 할머니가 우리 교회의 첫 성도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그 날부터 더 많은 사람들을 시중드는 영원한 식모살이로 들어간것이다. 가난한 자나 부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건강한 자나 연약한 자나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처음 그 할아버지에게 시중들던 때와 같은 식모의 모습으로…….

유정옥 사모님의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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