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들의 소원(1)

설날의 물결은 길마다 자동차로 넘실거리고 차도는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집에서 길을 떠난 지 얼마만일까?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형진이가 입원해 있는 삼성의료원은 시끄러운 바깥 소리와는 달리 고요 속에 파묻혀 있었다.

중환자실 면회는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7시 30분 하루 두 번 밖에는 허가되지 않는다. 내과 중환자실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형진이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만났다. 나는 아무리 아들의 병 간호라고 해도 이십 년이 넘도록 병원 생활을 해야 하는 형진이 어머니가 측은하고 안쓰러웠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주님께 감사해요! 형진이 때문에 우리 가족 전체가 주님을 만났고 제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알게 되었거든요. 주님께서 저를 낮추시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가 얼마나 보기 싫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환하게 웃는 형진이 어머니는 오랜 세월 동안 중환자실에서 아들을 들여다 보며 마음을 끓인 얼굴이 전혀 아니었다. 예순의 나이를 바라보는데도 너무 곱고 밝은 얼굴이었다.

중환자실에 들어서니 그 곳에 입원해 있는 모든 환자들의 고통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다양한 아픔이 되어 저미어 온다. 그곳에서 만난 청년 형진이! 그는 중환자실이 오히려 익숙해진 사람처럼 편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형진이는 생후 12개월 때 척추성 근위축증이라는 불치의 병명을 진단받았다. 이 병은 온몸의 근육이 천천히 마비되는 병으로 근육이 말라 붙으면서 뼈가 휘어져 힘을 쓰지 못하게 되는 희귀질환이다.

모든 일상생활을 다른 이에게 의지해야 하는 만성적이고 진행적인 질병이다. 형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전신이 마비되었고 머리를 1밀리미터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중증 환자가 되었다.

형진이는 초등학교 다닐 나이를 살 수 있겠는가가 의문일 정도로 중증이었다. 그러나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열정으로 현재 스물세 살의 청년이 되었다. 형진이 어머니는 형진이를 휠체어에 싣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 학교를 마치게 한 위대한 사랑의 기적을 이룬 분이다.

형진이는 학교에 가는 날과 결석하는 날을 번갈아 하며 어렵게 초등학교 를 졸업했다. 중학교를 가야 하는데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중학교를 찾아갔다. 형진이의 6학년 담임선생님도 함께 동행해 주었다.

그런데 그 중학교 교장 선생님은 ‘장애인은 우리 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장애인이 학교에 들어오면 그 아이 때문에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생기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그 날의 교장 선생님의 얼굴을 형진이 어머니는 너무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절벽처럼 꽉 막힌 그 교장 선생님께 아무리 간절히 애원해 봐도 소용없었다. 형진이와 어머니는 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중학교에서 문전 박대를 당하고 처음으로 그렇게 소리 내어 처절하게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중학교의 문을 두드려 입학을 하게 되었다.

형진이는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부터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장애를 뛰어 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형진이가 중학교 1학년 학기말 시험 성적이 나올 즈음 그 교장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는데 형진이와 어머니에게 너무 부끄럽다는 말을 하셨다고 한다.

형진이는 우수한 중학교 성적으로 신체장애가 없는 여타 학생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증명했고, ‘장애인은 학교에 입학 할 수 없다’는 장벽을 헐어버린 것이었다.

형진이는 학교에 부담을 주는 학생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분신처럼 따라 다니며 학업을 돕는 모습이 오히려 다른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형진이를 힘껏 도와주었다.

형진이에게 항상 보건실 옆 교실을 배정해 주어 쉬는 시간마다 침대를 쓸 수 있게 해주고, 휴대용 인공호흡기 등 많은 소지품을 학교에 두고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어머니는 형진이 의 학교 시험 때면 학우들의 노트를 빌려 형진이에게 읽어주고 외우게 하여 형진이의 중학교, 고등학교 석차는 5〜6등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형진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또 형진이가 공부하는 것을 가장 행복해했기 때문에 아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어머니에게도 가장 큰 기쁨이었다.

형진이는 2002년 연세대 컴퓨터과학과에 정시 시험으로 당당히 합격을 했다. 수능을 치르던 날을 떠올리는 형진이 어머니의 눈에서는 어느덧 눈물이 가득 고여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건강한 청년들도 하루 온종일 긴장하여 시험을 치르면 지치고 지치는 수능의 분량이 아닌가. 게다가 수능 이틀 전에 폐렴이 와서 열이 나고 점심도 거의 먹지 못한 채로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온종일 치렀으니 그런 힘겨운 시험을 전신이 마비된 아들이 치러 낸 기적의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저는 그 날 형진이가 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았어요. 주님께서 기적을 이루고 계신 것을 목격했습니다.” 잔잔하면서도 분명한 형진이 어머니의 신앙 고백이었다.

전신마비의 형진이가 연세대에 정시 합격을 하면서 세상은 형진이에게 주목하였다. 각 신문사들은 연일 그 기적의 청년 이야기를 기사화 하느라 바빴다. 형진이는 학교에 다니는 시간보다 아프거나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형진이는 작년에 미국에 갔다가 병이 발병되어 미국 병원에서 2개월 반 동안 중환자실에 있었다. 타국 병원의 낯설음과 외로움과 공포와 절망과 싸우며 지낸 처절한 시간이었다. 그런 형진이는 라포트 주한 미군 사령관의 주선으로 의료진까지 동원된 군용 비행기로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흥해를 갈라 지게 하신 기적이 형진이에게는 전신마비로 인공호흡기를 장착한 상태로 하늘을 날게 하신 것입니다. 형진이의 하루하루의 삶이 순간순간의 삶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기적의 삶이었습니다.”

형진이는 스물셋 청년의 나이지만 몸무게가 24킬로그램 밖에 되지 않는 다. 음식은 위에 직접 연결된 호스를 통해 먹을 수 있으나 위에서 분비되는 위산이 새어 나와 호스를 연결한 살의 부위를 상하게 하므로 너무 쓰리고 아프다.

항상 발갛게 부어 있는 연결 부위에 약을 바르고 온갖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다. 기관지 절개를 통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호흡을 하므로 절개 된 곳이 염증을 일으켜서 고통이 크지만 얼굴 한 번 찌푸리는 일이 없다.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있어 등과 엉덩이에 욕창이 나서 짓물러 고생도 많았다. 그런데 왜 형진이는 그 모진 고통을 호소하지 않을까?

형진이는 이렇게 고백했다.

“제게 소원이 있다면 이제는 어머니께 짐이 되는 아들이 아니라 힘이 되어 드리는 아들이 되고 싶어요. 어머니께 웃음을 드리는 아들이 되고 싶어요. 그렇지 않다면 주님이 저를 하루 빨리 천국으로 불러 주시기를 원해요.”

기도 속에서 나오는 아들의 소원을 듣고 어머니는 이렇게 응수하셨다.

“형진아! 어서 장가가서 손자 하나 이 어미 품에 안겨다오. 나는 네가 내 눈 앞에 이렇게 있어 주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요, 기쁨이란다.”

23년 동안 전신마비의 아들을 간호해온 어머니의 고운 얼굴엔 이젠 주름이 지고 흰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형진아! 네가 읽고 힘을 얻었다 는 그 책을 쓴 사모님이야! 너의 소원을 말해봐”

형진이가 온몸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눈동자뿐이다. 그는 눈으로 말했고 어머니는 형진이의 눈빛만 보고도 그의 마음을 읽어냈다. 어머니는 형진이의 무언의 말을 이렇게 통역해 주었다.

“어제 우리 남포교회 권사회에서 형진이 병문안을 왔어요. 권사회에서 형진이 먹고 싶은 것 사 먹으라고 20만 원을 주셨지요. 형진이가 생전 그런 것 에 관심이 없었는데 오늘은 그 돈이 얼마냐고 물어서 20만 원이라고 알려 주었지요. 그랬더니 그 돈을 사모님을 주라고 하네요. 노숙자 아침식사 비용으로 주고 싶대요. 그것이 소원이라네요.”

나는 형진이가 주님께 쉬지 않고 간구하고 있는 진정한 마음의 소원을 그 가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받는 아들이 아니라 어머니를 간호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해주세요. 이 땅에 태어나게 해 주셨으니 나라와 사회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형진이는 비록 자신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으나 주님께 감사하는 감사 예물을 추운 겨울 차디찬 땅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허기진 배를 따뜻한 음식으로 대접하는 일을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드리기를 기뻐하였다. 형진이는 그 마음의 소원대로 이미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된 것이다.

유정옥 사모님의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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