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의 축복

욥기 3장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5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6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7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9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욥이 받은 고난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모아 놓은 것 같습니다. 사단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욕하게 만들려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한 것이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욥의 세 친구들은 그가 믿음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자기의 괴로움을 표현하지 않던 욥은 친구들 앞에서 그 고통을 토해내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은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캄캄하여 아무런 빛도 없었더라면, 어둠과 죽음에 속하였더라면… 등등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이 땅에 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사람 하나가 태어날 때 밤과 낮이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죽음과 어둠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거기에 하늘의 축복까지 내린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것은 현재 자신의 삶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욥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삶이 너무 고통스럽거나 부끄러울 때 자기 스스로 죽지는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때에 하늘의 축복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혹시라도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든지, 세상적으로 비천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도 우리는 천사들도 살펴보기 원하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인생이 이렇게 힘들까요? 어떤 믿음의 사람은 땅의 삶의 가장 큰 목적은 고난에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 회개하고 새로워지며 그 삶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목적을 묵상해야 합니다.

욥이 받은 고난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마귀의 목적입니다. 욥에게 고난을 주는 마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욕하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귀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회개의 기회가 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여 떠난 채로 삶을 마치면 영원히 멸망합니다.

혹시라도 그렇게 한 사람이 있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욥이 하나님을 뵈옵고 자기의 입술을 가리고 재에 앉아서 회개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회개의 기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하며 자기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고난의 또 다른 목적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욥은 고난 받기 전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욥기 전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의를 주장했고 그런 자기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찬양으로 많이 부르는 욥기 23:10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 말은 사실 믿음의 말이 아니라 자기는 잘못이 없고 이 어려움이 지나면 그 사실이 드러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예언이 된 것처럼 욥은 자기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교만한 것을 회개하는 것을 통해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난의 의미는 우리의 겉 사람을 깨서 속 사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주님을 찬양하고 인내하며 나간다면 결국은 축복의 결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욥기의 결말을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지나고 나니 역시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어려움을 지나고 계신 모든 성도님들은 이것을 소망으로 삼으시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복의 결말을 맺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내가 태어나서 살아있는 것을 감사하게 하소서
2. 고난의 껍질을 벗기고 그 안에 숨겨진 축복을 캐내는 인내와 믿음의 성도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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