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에베소 사람들은 죄에 대해 단호했습니다. 그들은 그릇된 것은 무엇이든 밝혀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포기할 생각은 단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 님께서는 그들에게 책망할 것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요한계시록 2:4).

하나님께서는 이 첫사랑의 문제를 너무나 심각하게 받아 들이셔서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그들에게서 제거하시겠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그릇 이해되고 있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관해 이야기하고 계신 바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 초기 주님과의 경험을 회복하고자 애쓰며 평생을 보냅니다. 우리는 첫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처음 구원을 받았을 때의 열심, 열정, 흥분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한 젊은 시절의 열정을 잃어버린 것으로 인해 슬퍼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 식어지고 말라 버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다 순진했 던 때로 돌아간다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충분한 영적상태는 아니며 그러한 상태는 이 구절의 보다 깊은 진리를 표현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처음 상태로 돌아가서는 안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기심에 의해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원했거나, 축복을 받기 원했거나, 치유를 받기 원했거나, 혹은 단순히 마음의 평안을 원해서 믿음을 가졌습니다.

저는 저의 초기 신앙으로 돌아가기 원치 않습니다. 그때 저의 사랑은 미숙했습니다. 제가 가진 사랑은 지혜와 경험도 부족했습니다. 저의 열정은 많은 고통을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헌신이라기 보다는 감정적 열정이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듯 합니다. 저는 주님의 은혜로 된 지금의 저 자신에 못미치는 그 어떤 상태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에베소인들이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지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인내함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열정, 주님의 이름에 대한 경외감도 잃지 않았고 주님을 위한 일에 게으르지도 않았습니다.

에베소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도들의 사랑을 잃은 교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처음 사도들의 교회가 가졌던 사랑으로부터 이 교회가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를 주님의 교회에 드러내고 계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올바른 교리를 갖추고 있다. 너희는 내 일을 행하는데 헌신하였다. 너희는 거짓 선지자에게 속지 말라는 말씀에 뿌리를 박고 있다. 너희는 모든 명령을 간직하고 있다. 너희는 칭찬 받을 만한 자선행위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향한 사도들의 사랑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모든 역사에 애착을 갖고 있지만 정작 그 역사를 불러일으킨 동기가 된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적인 사랑은 잃어버렸습니다. 그 첫사랑은 매우 실질적인 방법으로 나타났 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즉각적인 재림에 대한 사모함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영광의 삶속에서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연합을 갈망하였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영적 갈망으로서 거룩한 주님의 형상을 닮아 주님의 임재 가운데 완전한 교통을 이루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있기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즉각적인 재림에 대한 약속의 점진적인 망각과 그 약속의 성취에 대한 믿음의 상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얽매이지 말라는 주님의 경고를 내팽개쳤고 깨어 기도하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인을 기다리는 종처럼 등불을 들고, 기 름을 준비하고, 긴장한 상태로 굳건히 서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더 이상 우리의 주요한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물질주의의 파도에 너무나 몰두해 있습니다.

우리는 “눈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인내함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십자가’를 지는데 지쳤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몰아내거나 아주 먼 장래의 일로 미뤄놓음으로써 우리는 더 이상 깨어 있거나 경계할 필요를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

그 결과 모든 신부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인들 가운데 이토록 엄청난 우상숭배와 무사태평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기이하지 않습니까?

저는 어느 누구와도 ‘휴거’와 같은 교리에 대해 논쟁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곤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한 자를 악한 종이라고 부르실 때 제가 두려워 떨 것이라는 것 뿐입니다(마태복음 24:48).

주님께서 홀연히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한밤 중의 도둑과 같이 오시겠다는 뜻을 전하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많은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커다란 슬픔과 시험이 다가오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야 할 경고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도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영광의 구름을 타시고 홀연히 임할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습니다. 교회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고백이 용솟음치게 하는 첫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요한계시록 22:20).

초대교회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선포하였습니다(마태복음 24:24). 지금 우리는 “주님께서 재림을 늦추시고 계십니다. 갑자기 아무 때나 오시지는 않을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들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입술로부터 우리가 직접 들은 메시지는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는 것입니다(마태복음 24:44).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들으십시오. 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한 사도들의 사랑을 회복하십시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가운데, 깨어, 사모하는 가운데 의로운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의 백성들이 커다란 시험을 겪을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무엇이든지 준비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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