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기독교인에 대해 말씀하신 세 가지 원칙(2)

기독교인의 세 번째 특징은,“기독교인의 삶은 앞으로 임할 하늘나라에 대한 생각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이것은 다시 신약성경의 가르침의 기초적이며 필수적인 요소의 일부가 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교훈이며 신약성경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있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훌륭한 믿음의 영웅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도시를 가진 것이 아니라 장차 올 도시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한 데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지으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성을 찾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그 비결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과의 명백한 차이점을 보게 됩니다.

비기독교인은 이 세상 너머의 세계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쾌락만 추구합니다. 생각을 억제하는 것, 특히 죽음과 내세의 생각을 회피하는 것 이것은 비기독교인들에게 전형적인 것입니다.

비기독교인이 죽음이나 영원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이런 일들을 매우 많이 생각하며, 그의 삶과 전망에 있어 큰 통제원칙과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이, 기독교인이 박해에 직면할 때의 관점에서 어떻게 예증되는가를 살펴봅시다. 기독교인이 박해에 어떻게 직면하는가를 보여 주심에 있어 주님은 이 세 가지 특징적인 진술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 불어 있는 조건은 어떤 의미에서든 우리가 자연인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어서는 아니 되며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기 때문에 받는 그런 박해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박해는 폭력적인 것일 수도 있고, 체포되어 감옥이나 집단 수용소에 던져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총살의 형태로나 혹은 다른 어떤 형태의 살해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박해는 직장을 잃는 형태로, 조롱 과 경멸과 조소로, 일종의 수군거림의 형태일 수도 있습니다.

고난 당하는 방법은 끝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상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일들을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여기 서 말씀하십니다. 보복하기는 매우 쉽지만 기독교인들은 보복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도 보복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우리는 그분을 닮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할 일은 여러분의 행동, 곧 행동에 의한 대꾸를 억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이것으로 만족하시지 않았습니다. 참된 기독교인의 삶은 억압 상태에서 사는 삶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정도를 넘어서야 합니다.

둘째로, 여러분은 박해를 원망하지 않는 상태에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하여 불끈 화를 내거나 울화통을 터뜨리는 것을 우리 주님께서 원치 않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도 이런 감정을 약하
게 또는 격렬하게 느끼며, 이것으로 상처를 입고 지독하게 분개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가 이것을 초월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빌립보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알아봄시다. 바울은 매우 신경과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서신이 이것을 분명히 보여 즙니다. 그의 감정은 고린도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볼 수 있듯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로 이런 일들로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자아까지도 비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비판을 하나님께 일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해지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 분개해서는 안 되며 보복해서도 안 됩니다.

세 번째로는 우리가 박해로 기가 꺾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 분이 처음 두 가지를 행한 후에 그일 때문에 낙심하고 불행감을 느끼게 될지 모릅니다. 그일 자체 때문만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여러분의 영혼이 억압감이나 압박감에 덮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어떤 특정인에 대하여 분개감을 느낀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어째서 이래야 하는가? 왜 내가 이런 취급을 받고 있는가?”라고 자신에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신앙생활
이 억압과 우울감으로 억눌리고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제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 역시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입니다. 주님은 “기삐하고 즐거워하라”고 명쾌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산상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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