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사람의 눈은 다르다

이사야 1장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이사야서는 모든 선지서의 시작이 되는 책입니다. 그 중에서도 대선지서로 분류됩니다. 다른 대선지서의 저자인 에스겔과 다니엘은 유다가 멸망한 후에, 예레미야는 멸망 전부터 멸망한 후까지 활동한 선지자들이라면 이사야는 유다가 멸망하기 전 그것도 주로 선한 왕들이 다스리던 시대의 선지자였습니다.

웃시야는 정치와 경제 외교에 능했고 하나님을 경외했던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강성해지자 넘지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제사장이 아닌데 제사를 드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나병이 들었고 죽을 때까지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요담은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며 바른 길을 걸었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실수를 거울 삼아 성전에는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성전을 보수하하는 일을 했고 유다의 성읍들을 견고하게 만들었던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아하스는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 앞에 각종 가증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아람의 침략을 당하고 또 북왕국 이스라엘의 침략까지 받아 나라가 황폐해졌습니다. 보통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은 이런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찾았는데 아하스는 오히려 자기를 침략한 아람의 신들을 찾아 하나님을 더욱 노하시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아하스에게서 유다 최고의 왕 중 하나인 히스기야가 나왔습니다. 처음으로 유다의 모든 산당을 헐고, 잃어버린 모든 제사를 회복하고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부까지 유월절을 회복하게 만든 왕이 히스기야였습니다.

이렇게 이사야는 어떻게 보면 유다가 그렇게 악하지 않은 시기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유다를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으로 보고 계셨습니다.

악한 사람은 그 악한 삶 중에서 어쩌다 선한 일을 하나 하면 자기가 굉장히 선한 사람이 된 줄 압니다. 선한 사람은 그 선한 삶 중에 어쩌다 악한 일을 하면 자기는 완전히 타락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세상에 선한 사람은 없습니다. 악하다는 자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 중 자신을 선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악인입니다. 자기를 악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양심적인 악인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양심적인 악인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내가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생각해 봅시다. 이 말씀은 마지막 때가 되면 믿음 자체가 변질 될 것이라는 예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가 그렇다는 말씀이고 우리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를 비롯한 선지자들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해 쓴 예언들을 할 때, 그 말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더구나 요담과 히스기야 때처럼 성전을 보수하고 제사와 절기가 회복되는 것 같을 때는 더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절기가 회복되는 것은 겉모양 뿐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삶은 여전히 가증스러웠습니다. 제사는 회복되었지만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지 않았고 주인으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여러 죄 가운데 온 몸이 성한 곳이 없는 것과 같이 그 마음이 더러워졌지만 그들은 그저 제사가 회복되었으니 다윗의 때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세대의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기독교에서 사라졌던 많은 은사들이 회복되고 예배의 모습만 보면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은혜를 충만하게 받은 것 같은 얼굴과 행동들이 예배마다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 모든 신앙의 행위들이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삶을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것이 이 세대의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컨트롤합니다.

그 증거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며 순종하라는 말이 점점 더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을 한 번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면 어떤 손해가 생겨도 포기할 수 있습니까?

반대로 자신이 정말 원하지 않는 일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아무리 싫더라도 순종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은혜 받은 후30년 가까이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목사나 선교사를 만드실까봐 어느 이상 은혜 받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꽤 많이 봤습니다.

저는 예배에서 감동적인 얼굴을 하거나 손뼉치며 두 손을 들고 찬양하거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이 그 사람의 현재 마음 상태일 수는 있지만 예배에서 보이는 것이 다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믿음은 모이는 예배가 아니라 삶의 예배에서 증명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서 잠시 선한 생각이 올라온다고 자기를 선하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 선한 생각이 삶으로 옮겨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그것을 선하다고 하실지를 생각하시고 그를 두려워 하는 마음을 회복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죄인이 혼자서 자신을 선한 사람 취급하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무의미한 일입니까?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고 있던 유다 백성에게 이사야를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그 마음으로 구원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은 자신도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겉모양에 속지 않게 하소서
  2. 주님께서 나의 마음과 삶을 어떻게 보실지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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