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행위의 열매를 먹게 된다

이사야 3장 10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12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다스리는 자는 여자들이라 내 백성이여 네 인도자들이 너를 유혹하여 네가 다닐 길을 어지럽히느니라

현대 기독교 안에 이단 신앙보다 더 무섭게 들어와 박혀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으면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는 신앙입니다. 물론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만 그것이 어떤 일을 해도 상관없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행위에 책임 지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죄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만약 오늘 본문을 그들에게 보여주면 의인이 의의 열매를 먹게 된다는 말보다 악인에게 화가 있다는 말이 더 마음에 와 닿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들려주면 “이사야서는 구약성경 아닙니까? 구약은 율법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복음서에서도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서도 사람은 자기가 행한대로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의의 열매를 먹게 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겉이 아니라 안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안에서부터 나와 겉으로 나타나는 의로운 행위를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안이 선하더라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악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안이 선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다는 말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모든 의가 그 안에 인격으로 자리 잡은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사람입니다.

최고의 요리사는 먼저 최고의 맛이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 말로 입맛이 구린 사람은 구린 맛이 나는 음식 밖에 만들 수 없습니다. 최고의 입맛을 가진 사람은 당장 기술이 부족해도 최고의 요리사가 될 수 있지만 아무리 기술이 좋은 사람도 입맛이 잘못되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사람이 되려면 그 안에 하나님이 선하다고 여기시는 것이 법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이 그 안에 자리잡은 사람은 당장 부족해도 결국 의인이 될 수 있지만 세상 법이 그 안에 자리잡은 사람은 아무리 성실하고 고매한 인격이 있어도 결국 하나님 앞에 악인으로 발견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두 가지를 살펴야 합니다.

첫째는, 자기의 행위를 살펴야 합니다. 가끔 세상 사람도 악하게 보는 일을 하면서 그것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가리려고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30년 전에 나왔던 영화에서 어떤 비리 경찰이 밤에는 몰래 교회에 나와서 눈물을 흘리며 우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 장면이 주는 메세지는 기독교 신앙을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자기 이익이 먼저이고, 자기 자존심이 상하면 악귀처럼 변하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세상에서 선한 사람들이 얼마나 성도들을 비웃을까요? 얼마나 교회에 나오고 싶지 않을까요? 정말 온전한 성도라면 세상의 선한 사람들보다 더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실 세상에서 선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은 더 선한 것을 사모하여 주님 앞에 나와야 정상인데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이 주님 앞에 나오는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자기 행위를 살핍시다. 당신이 성도라면 믿지 않는 사람도 감탄하는 삶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둘째, 자기 안을 살펴야 합니다. 남 보기에 부끄러운 행실을 가진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겉모양이 의로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악한 행실을 고치기 위해서도 안이 바뀌어야 하지만 의로운 행실이라도 정말 그 안이 바뀌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 앞에서는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이해해서 내 마음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도 간단하고 쉽게 이해되는 것도 있지만 정말 법의 이치라는 것을 배워야만 이해되는 것도 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법을 어겨도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법도 우선 받아들이고 계속 묵상해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0세기부터 화두가 되고 있는 페미니즘에 관한 문제를 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본문 마지막 절에 아이와 여자가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이 내리는 저주라는 뜻의 말이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다스리는 일은 남성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성이 하나님 앞에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고 믿습니다. 만약 어떤 회사에서 두 사람을 뽑아서 한 사람은 총무과에 한 사람은 영업과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총무과의 일이 영업과의 일보다 더 까다롭습니다. 이럴 때 총무과에서 일하게 된 사람은 불평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두 사람이 받는 연봉이 10억원이라면 불평하지 않을 겁니다. 그 열 배 백 배가 된다면 날마다 입이 귀에 걸려서 일할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남녀 평등을 외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다니까요. 하지만 영생을 믿는 성도는 달라야 합니다. 여성은 여성의 일을 남성의 일을 해서 똑같은 영생을 얻는다면 자기에게 주어진 모양대로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도의 삶은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것입니다. 페미니즘 같은 것들을 시대적 사조라고 하는데 성도가 이런 것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일입니다. 모든 불평등과 손해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소화해 낼 때 우리 안에 예수님의 성품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안이 의로워서 행위가 의롭고, 행위가 의로워서 의의 열매를 먹게 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의 법으로 새롭게 되게 하셔서 삶에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게 하소서
  2. 영생을 참 소망으로 삼아 세상의 철학이나 유행하는 사조에 휘말리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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