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장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오늘 본문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는 이사야의 고백은 이 말에 감동을 받아 선교사가 되고 목사가 된 종들이 많을 정도로 신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입니다.

이 시대에 정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신다면 그 말씀은 바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일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셨는데 그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해 속절없이 멸망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음성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모양으로든 복음을 위해 헌신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헌신이란 말을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열두 명의 사도와 성도들 만으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그리고 소아시아 지방을 복음화 했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의 개념으로 사역자는 열두 명이 다였습니다.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은 커녕 우편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성도들이 복음에 헌신되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죽기 전까지 예루살렘 교회는 큰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문제는 그 부흥이 예루살렘에만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의 죽음을 시발점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를 허락하셨습니다.

처음에 성도들은 다른 유대지역과 사마리아로 피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라는 바리새 청년이 대제사장에게 권한을 받아 그들을 쫓아다니며 박해했습니다. 그렇게 쫓겨 다닌 성도들은 소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까지 퍼졌고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과 같은 사도들의 선교도 있었지만 복음에 헌신된 성도들이 없었다면 그런 부흥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같은 헌신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는 복음의 헌신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복음을 듣고 순종하는 헌신입니다. 특별히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지 못하면 복음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행동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닫게 한 후에 복음을 전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하나님께 헌신되었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 가야 하는데 그곳은 보통 우리의 가정과 일터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은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일입니다. 이것은 먼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없고 온전히 그들을 섬기려고 한다면 없어질 문제가 대부분 아닙니까?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그 마음을 여는 열쇠이고 동시에 우리 인생의 행복의 열쇠인 것입니다.

둘째,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불신자들 중에서도 훌륭한 섬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열린 마음에 넣어줄 복음이 없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보내실 사람을 찾을 때 “나를 보내소서”라고 자원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시고 사람을 보내실 때는 반드시 메세지를 주십니다. 성도가 받은 메세지는 바로 복음입니다.

성도는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복음을 아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알되 지식으로 알기 전에 실제로 경험해야 합니다. 복음을 통해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복음을 통해 주님을 만나면 가장 먼저 그 마음에 듣게 되는 음성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입니다.

그래서 처음 은혜 받은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전도합니다. 성경을 깊이 아는 사람이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주님을 만난 사람이 전도합니다. 주님을 만난 기억이 생생한 사람의 말은 성경의 지식이 부족해도 능력이 있습니다. 반면에 아무리 성경 지식이 풍부해도 주님과의 만남이 없는 사람의 말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믿음을 확인해 보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자기 안에 보내실 사람을 찾는 주님의 마음이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볼 때 내가 만난 주님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 오른다면 그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만약 그 믿음이 있다면 베드로 사도의 말대로 그 믿음 위에 덕을 쌓으십시오. 자기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그 덕 위에 지식을 쌓으십시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말씀을 바로 알라는 말입니다.

그 위에 절제를 더하십시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라는 말입니다. 그 위에 인내를 더하십시오. 그 모든 일을 주님 오실 때까지 참고 행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형제를 위해 목숨을 줄 수 있는 사랑을 행하십시오.

성도들마저 너무나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세상입니다. 나 한 사람이라도 성도다운 성도가 되려고 결단하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는 고백입니다. 부디 우리 중에 그런 성도들이 많이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1. 복음을 들을 때 보내실 사람을 찾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2. 그 음성을 들을 때 주저 없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성도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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