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합당한 삶 그리고 선한 싸움

빌립보서 1장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불신자들이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하나님이 있으면 보여달라” 입니다. 세상 만물을 보면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절대로 부정할 수 없음에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보여줍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다스림을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의 말을 빌리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그리스도인답게 삶으로써 그 시대의 사회들을 정복했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삶의 유형과 서로 사랑하는 모습 자체가 이방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정말 기독교인들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29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은혜만 받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받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잘 생각해 보면 어떻게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율법’이라고 말하는 산상수훈의 말씀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다면 절대로 이 삶의 지침을 바꾸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지침을 따라 사는 것 자체가 기쁨인 동시에 고난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삶이 세상에는 하나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첫번째 목적이 뭘까요? 그것은 불행하거나 비참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불행은 가난하고 병들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 때문이라면 이런 것들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뻐합니다.

무조건 불행하고 가난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행복을 구하는 사람들은 불행을 피하기 위해 불의라도 마다하지 않을 때,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불의를 피하기 위해서 불행이라도 감수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의 목적은 불행하지 않는 것이고 믿는 사람의 목적은 불의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십자가가 무엇인지 아는 성도들이 가진 일종의 컴플렉스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삶이 너무 평안하거나, 또는 고난이 있어도 그것이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반드시 불행을 자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는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그것이 세상의 눈에는 불행을 자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에는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이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공격적인 고난 수비적인 고난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적극적인 고난은 복음을 전하면서 받는 고난입니다. 마귀의 소유가 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주님께로 돌이키게 한다는 의미에서 공격적인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엄청난 반격이 있습니다. 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지키려는 사람의 몇 배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 사실은 영적 싸움에서도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극적인 고난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소극적인 고난도 절대 쉽지 않습니다. 소극적인 고난이란 삶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상황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마귀가 주는 시험이 있습니다. 그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자존심이 상해야 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불평과 불만을 들을 일들을 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적극적인 고난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지금 삶 가운데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어려움이 주님 때문에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통스럽고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입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고난이 어떻게 찾아 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 고난을 주님 뜻대로 감당하면 그 고난이 믿음의 고난으로 변하고 주님께서 기억하십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모든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삽니다. 같은 상황에서 신자와 불신자의 삶이 극명하게 다른 것은 그 안에 있는 것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람은 배추를 보면 샐러드를 해먹고 한국 사람은 배추를 보면 김치를 해먹습니다. 한 발자국 더 나가서 생각하면 미국에서 자란 한국 사람은 샐러드를, 한국에서 자란 미국 사람은 김치를 해먹을 겁니다. 그 안에 있는 것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 죄 된 세상에서 죄를 먹고 마시며 살아온 몸과 마음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태어나서 그의 말씀과 인격으로 그 안이 가득 찬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말씀은 세상과 반대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30절에서 바울은 이것을 ‘싸움’이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의 싸움이 빌립보 교인에게도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바울을 따라 선교여행에 참여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바울을 위해 온 힘을 다해 기도했고 그 삶에서 그리스도의 성품과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삶을 기뻐하셨기에 바울을 통해 그들을 칭찬하셨습니다.

우리 안에도 이 싸움이 있습니까? 그 싸움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꼭 그 싸움이 대단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싸움이라도 계속 싸우면서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끝까지 이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이런 삶의 마지막이 영광스러운 천국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 믿음의 선한 싸움이 그 삶에서 그치지 않는 성도로 영광의 그 나라에 들어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계명이 내 안에 새겨져서 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2. 믿음대로 살려는 선한 싸움을 순간마다 싸우게 하시고 끝까지 싸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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