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근거

빌립보서 1장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그는 로마 감옥에 갇힌 상태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하고 고난스러운 항해 끝에 로마에 도착해서 거기서도 갇혀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갇힌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입니다만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 고통 대신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그 소망은 빌립보 교회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니 그가 끝까지 그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유한 몸일 때에도 갇힌 몸일 때에도 이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입을 열어도 이 소망이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자주장사 루디아가 있습니다. 그녀는 바울이 안식일에 강가에서 전도할 때 그 말씀을 듣던 여자들 중 한 사람이었는데 그 순간에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또 귀신 들려서 점을 치던 여종도 있습니다. 그녀는 오랜 세월동안 귀신에 들려 있었는데 그 주인들은 그 괴로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점을 치게 해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나타나서 귀신을 쫓아내고 그녀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여종의 귀신을 쫓아낸 죄로 그가 맡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찬양하며 예배를 드릴 때 옥문이 열리고 간수는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자결을 하려다가 바울을 통해 온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루디아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녀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듣도록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녀가 본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십자가 복음을 듣게 하셔서 구원의 길로 들어가도록 인도하신 것은 하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귀신 들린 여종의 구원도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 가족의 구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을 받았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착한 일’이 바로 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끝까지 이 일을 계속 하실 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변하지 않을 진리를 가지고 두 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여 넘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연약한 부분이 있어서 자꾸 넘어지고 그것 때문에 심히 낙심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를 망하게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됩니다.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은 계속 죄를 지어서 망하는 것도 있지만 죄 때문에 낙심해서 십자가 앞에 나가는 일을 중단해서 망하는 것도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에게는 후자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실망스럽습니까? 자신이 자랑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거듭나면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립니다. 그리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게 되면 그 뜬 눈을 다시 감고 싶게 됩니다. 그 때가 십자가 앞에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합니다. 우리를 유혹해서 죄를 짓게 한 후에 우리의 귀를 막아버립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라는 복음의 말씀은 들리지 않게 하고 “죄인은 멸망한다”는 경고의 말씀만 들리게 해서 십자가 앞에 나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죄를 깨달았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죄를 버리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해 보려고 하는 두번 째 이야기입니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끝까지 이루실 것이라는 진리를 가장 악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이 진리를 붙잡고 안심하고 계속 죄를 짓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알면서도 인생의 방향을 틀지 않고, 분명히 성경의 진리와 위배되는 삶을 살면서도 십자가 사랑을 들먹이며 회개할 마음조차 가지지 않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친족을 외면하는 사람은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뜻을 잘 생각해보면 신자 중에도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빙자하며 안심하고 죄를 짓는 사람이야 말로 불신자보다 악한 자입니다.

다윗의 사촌 요압이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화의 때에 무죄한 사람들을 많이 죽인 살인자였습니다. 솔로몬이 군사를 시켜 그를 죽이려 할 때 그는 제단의 뿔을 잡았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제단의 뿔을 잡은 사람은 죽일 수 없었지만 요압은 무고한 피를 흘린 사람으로 그 법에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헛되이 붙잡는 죄보다 무고한 피를 흘리는 죄가 있을까요? 우리 중에 이런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억합시다. 양심이 파선하여 은혜를 들먹이며 악한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제단 뿔을 붙잡고 죽은 요압과 같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고 날마다 순종하는 사람은 넉넉하게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

이 소망을 붙잡고, 동시에 칼날 같은 양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날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그 뜻대로 순종하여 어떤 시험도 넉넉히 이기게 하소서
  2. 은혜를 빙자하여 죄를 짓는 악한 신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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