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주를 위한 삶이 되게 하라

어느 기독 시인이 지은 비교적 긴 찬송가 가사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간단하고 짧게 말해
당신의 일상적인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헌물로
변화시킬 수 있다네”

여기서 간단하고 짧게 말한 것은 바로 ‘주를 위하여’ 이다. 이 찬송가를 오늘 날의 분주한 신자들에게 건네준다면 아마 천 명 가운데 한 명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메시지에는 참으로 놀라운 진리가 담겨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적인 것을 거룩하게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세대는 향락에 빠져 있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은 자극을 받은 탓에 신격이 지쳐 있고, 취향 또한 타락했다. 인공적인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자연적인 것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신성한 것들이 세속화되었고, 거룩한 것들이 저속하게 되었어며, 예배도 유흥희 형태로 변모하고 말았다. 흐리멍덩하고 게슴츠레한 눈동자를 가진 이 세대는, 닳고 마비된 감각에 스릴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강력하고 새로운 흥분거리들을 계속 찾고 있다.

싫든 좋든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현실 속에서 경건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서의 위험은, 우리 주변에 사는 헷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타락한 취향과 견해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도록 너무 많이 허용한 결과이다. 즉 앞서간 이스라엘처럼 우리 또한 그들의 방법을 배워 파멸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처해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처럼 세속화 되어 버린 이때에 우리는 과연 이런 치명적인 영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상적인 것들을 거룩하게 하고, 삶 속에서 영적 의미를 바로 들을 수 있을까? 해답은 이미 제시되었다. 삶 전체를 그리스도께 바치고 모든 일을 주의 이름으로, 또한 주를 위하여 해야 한다.

페늘롱은 우리의 행위를 하나님께 용납 받기 위해서 따로 직업(정직한 직업이라면)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대신 그동안 자신을 위해 해 오던 모든 것을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라고 조언한다. 그래야 그분께서 용납하신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이 너무 단순하고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기 원하며,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엄청난 헌신에 자신의 삶을 던지고 싶어 한다.

보통 영적인 일들 하면, 화형대에서의 후스, 보름수 국회에서의 루터,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리빙스턴 등을 떠올린다. 우리같이 단순하고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와 같은 영웅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매일 똑같은 일상과 특별히 죽거나 투옥당할 아무런 위협도 없는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삶을 살 수 있단 말인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 해답은 우리 가까이 있다. 먼저 마음의 왕좌가 있는 방을 비운 뒤 예수님을 그 왕좌에 앉으시게 하라. 관심을 집중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관심을 집중하라. 그리고 주인공이 되고 싶은 모든 바람을 버려라. 당신의 모든 것 속에서 예수님이 모든 것이 되시게 하고, 스스로가 점점 작아지도록 노력하라.

또한 삶이 오직 주의 영광만 되도록 헌신하라. 삶의 원동력이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지게 하라. 매일 행하는 행동의 이유가 우리 자신도 아니고, 가족이나 나라나 교회도 아니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이 되도록 하라. 그리스도로 하여금 모든 일에 우선권을 가지시게 하라.

이 모든 것이 너무 단순해서 당신의 눈에는 진리가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성경과 체험은 그것만이 일상적인 것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실히 말하고 있다. 주를 위하여 할 때만이 보잘것없는 작은 것들도 영원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습관적인 일상의 낮은 길이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밝고 높은 길로 변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 일상생활의 지루한 일들이 섬김이 될 것이고, 우리가 매일 하는 수많은 짜증스런 의무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헌물과 희생물이 될 수 있다.

그 어떤 헌물도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드려지면, 더 이상 너무 작은 헌물이 아니다. 무엇이건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은 가장 큰 헌물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을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 수는 있다. 때로는 이것이 더욱 영웅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더 큰 상급을 받을 만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주를 위하여’ 이 말은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이것이 마음과 입에서 진실하게만 된다면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도 할 수 있고, 저질의 금속을 황금으로 변하게도 할 수 있을 것이다.

A. W. Tozer의 ‘능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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