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의 은혜, 체휼의 더 큰 은혜

히브리서 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긍휼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저는 이렇게 신앙생활 하다가 정말 영원히 후회할일 생기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 걱정이 극에 달하면 왜 나를 이렇게 연약하게 만드시고 이 시험 많고 유혹 많은 세상에 두셨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이 이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 연약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돌보아 주시며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되 그가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흘리신 것이 다 내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처음 거듭날 때 뿐 아니라 내 삶 전체를 지배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의로운 크리스챤이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저 스스로를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는 모든 순간은 다 죄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바라고 묵상하지 않는 시간마다 육체의 욕심과 계획이 제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를 믿어서 자기가 의로워 진 것처럼 착각을 하십니다만 착각 중의 착각이고 자신을 영원한 형벌로 이끌 착각입니다. 남에 대해 판단하는 사람의 눈에는 들보가 들어 있다는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정죄하는 죄가 더 크다는 말이 아니라 정죄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저도 육신을 자졌기 때문에 육신적으로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인간적인 존경심이 생깁니다. 그러나 은혜에 관해 묵상하다가 그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저와 전혀 다르지 않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각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배설물에서 냄새가 나는 것처럼 그들에게 있는 죄의 냄새가 맡아집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시각이 제 심령을 지배할 때도 한 부류의 사람들 만큼은 절대로 죄인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 분들은 바로 하나님 앞에 눈물 흘리며 회개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납작 엎드려져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십니다.

주님은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믿는 도리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시다고 믿는다면 그 긍휼함을 얻기 위해 자세를 낮춰야 합니다. 컵에 물을 받으려면 컵을 물 떨어지는 곳 밑에 두어야지 그 것보다 위에 두거나 같은 높이에 두면 절대로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은혜를 받으려면 낮아지고 겸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의 체휼하심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체휼이란 말은 그 사람의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사람의 느끼는 감정을 같이 느끼면서 불쌍히 여긴다라는 말입니다.

예전에 암으로 의심이 되는 증상이 있어 입원한 사람의 병문안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아파서가 아니라 자식들 걱정 때문에 초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자기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 아픔과 어려움을 알기에 자기 자식들이 아빠 없는 아이들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는 말을 합니다. 감사하게도 그 분은 하나님 은혜로 지금은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분이 자식들을 위해 느낀 것이 바로 체휼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왜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받는 시험과 유혹들을 완전히 이해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렇지만 방금 언급한 그 아버지와 주님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에게는 해결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녀가 불쌍해도 자신의 병을 스스로 고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아버지이지만 우리 주님께는 도우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실 능력이 있으시고 시험과 유혹을 이기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 보좌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담대하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뻔뻔하다라는 뜻과도 통할 수 있습니다.자기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드는 것이 잘못이라고 느낀다면 자기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다 자기 행위를 의지하는 교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로운 삶 중에도 죄악 된 삶 중에도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해서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주님을 닮아 온전해지는 것이 목적이지만 우리가 완전해서 받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받아 주십니다. 이게 은혜 중의 은혜인 것입니다.

다만 주님 앞에 진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거짓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거절하십니다. 제가 30년 이상 노래를 했었습니다. 지금도 어지간한 사람은 한 두소절만 들으면 대충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됩니다. 사람도 이런데 하물며 우리도 모른는 우리의 속까지 알고 계신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 믿음의 수준을 잘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오래 교회를 다녔든지 우리의 직분이 무엇이건 다 깨끗이 내려 놓으시고 어차피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끝나는 신앙생활 처음부터 다시 잘 점검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후회 없을 믿음, 아니 지금도 일말의 불안감도 없이 주님 나라를 소망할 수 있는 믿음을 다 가지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굳게 믿는 믿음을 주소서.
  2. 주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도우신다는 사실을 은혜 중의 은혜로 믿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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