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히브리서 12장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믿음을 어떻게 보실지 궁금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땅에 있는 동안 자기가 받을 심판에 관해 미리 알 수 있는 방법 중 한 가지가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목적은 주님을 뵙는 것인데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지 않아 그분을 뵐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그것은 탈락한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다만 아직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화평함을 좇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용서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용서는 무조건적인 용서입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지옥불에서 고통 당할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면, 그것도 그냥 봐주신 것이 아니라 대신 지옥과 같은 고난을 당하셔서 용서하셨다면, 그 용서를 받은 사람이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주님께 제대로 용서 받지 못했거나 용서 받은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제대로 구원을 받지 못했거나 구원의 길에서 떨어져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움은 믿음 자체를 부정하는 심각한 상태이지만 중독처럼 그 사람의 골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그 심각함을 모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건널 다리를 부수는 것이다.”
 
죠지 허버트라는 사람이 한 말입니다. 이 사람이 크리스천이라는 기록은 없지만 그가 한 이 말은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예전 사영리 전도지에서 본 것 처럼 주님께서 십자가로 멸망에서 영생으로 가는 다리를 놓아 주셨는데 누군가를 미워하는 순간에 이 다리는 끊어지게 됩니다. 꼭 용서하십시오.
 
또 화평함을 좇는 것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잘 안 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도 열심히 사역을 하고 남을 섬기고 별의 별 일을 다하는 것 같을 때도 그 깊은 중심을 보면 결국 저 자신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자신을 불사르는데 내어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바울사도의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겠다는 생각을 하면 참 괴롭습니다.
 
만약 사람이 온전히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온전한 믿음의 사람일 것입니다. 항상 자기의 깊은 곳을 바라보고, 또 자기의 섬김이 물질 또는 자기의 유익에 관련된 일들 앞에서 변하지는 않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거룩함을 좇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거룩함은 점잖고 품위가 있는 것을 넘어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팔복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곧바로 “사람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거룩함을 좇으라는 말씀입니다.
 
그 착한 행실은 산상수훈의 구체적인 행동강령들입니다. 그 말씀들을 요약해 보면 첫째 물질을 깃털처럼 가볍게 생각해야 합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달라는 대로 주고 돌려 받을 것을 바라지 말라고 하시니 물질을 가볍게 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둘째, 자기 몸을 돌보기 어렵습니다. 때리면 한 대 더 때리라고 다른 쪽을 내밀고, 길을 가자면 가는 것 뿐 아니라 돌아오는 것까지 함께 해야 합니다. 몸을 가리고 있는 옷을 달라고 하면 그것도 벗어줘야 하니 이렇게 하면 분명히 몸이 상할 겁니다.
 
셋째,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욕하고 때리고 손해를 입힌 사람을 용서하는 것을 넘어 축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더 어려운 일이 있는데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마 모욕을 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자랑할 만한 일이 생겼을 때 참는 것일 겁니다.
 
여지껏 나눈 이야기만 생각해도 마음이 무너지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가 많이 놓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좇으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애쓰라는 뜻입니다. 요즘 제가 많이 하는 말인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진실한 소원이 있기를 요구하십니다.
 
우리 안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려는 마음이 진실하다면 실수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아무리 해도 해결이 안 되는 제 죄성 때문에 낙심하다가도 이 말씀이 생각나면 힘이 납니다.
 
저는 정말 주님의 발뒤꿈치라도 본 사람은 자기를 보면 절망하고 주님을 보면 소망을 가지게 된다고 믿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 절망이 주님을 닮게 하기도 합니다.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는 자기를 보고 절망할 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기가 쉬워지는 것이지요.
 
바울 사도도 거듭난 후에 후회할 만한 일을 한 것이 성경에 나옵니다. 바나바의 조카 마가라는 청년 때문에 그와 심하게 다툰 것입니다. 보통 성경은 모든 사건을 굉장히 담백한 어조로 기록하는데 바나바와 다툰 것은 ‘심히’ 라는 수식어를 썼습니다.
 
자기가 자책하면서 쓴 것도 아니고 동역자인 누가가 쓴 것입니다. 한 마디로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났다는 말입니다. 그 후에 얼마나 후회가 컸을까요? 아무리 다툰 이유가 정당했다 할지라도 사도가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도록 싸웠으니 참 부끄러웠을 겁니다.
 
이 일은 그의 청장년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그가 노년에 쓴 서신서들을 보면 ‘바나바의 생질 마가’를 훌륭한 동역자로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그를 섬기고 도우라고 부탁하는 말이 세 곳에서나 나옵니다.
 
그 사이 바나바와 화해하고, 또 마가도 너그럽게 받아 잘 훈련시켰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 이제 어느 정도 성장한 훌륭한 전도자인 자신과 바나바를 더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갈라놓으셨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 마음만 진실하다면 그 사람의 악함과 약함까지 사용하셔서 얼마든지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모든 사람과 더불어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        다른 사람의 어떤 잘못도 용서하고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화평을 이루게 하소서
2.        거룩한 하나님을 우리의 말과 행실로 나타내는 빛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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