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3장9-15

히브리서 13장9    여러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브리서 기자가 편지를 맺으면서 당부하는 말들을 같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사람과 헤어질때면 당부할 말들이 많이 생각나시는 것처럼 이 분도 마지막에 많은 중요하고 실질적인 당부를 많이 합니다.

9    여러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오늘의 첫 번째는 교훈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여지껏 해온 신앙생활에서 후회되는 부분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이거말고 뭔가 분명히 다른게 있다라고 생각하고 찾아 헤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제 육체의 욕심을 포기하기 싫었고 고난의 길을 걷기가 싫어서였습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의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고 주님이 주신 은혜안에서 감사하면서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열어 주셨는데 그 길을 가기가 싫어서 아니면 너무 평범해 보여서 다른 것을 찾았었습니다.

나름 열심 있는 성도들 중에는 남다른 거 특별한 거 좋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더 낮아진 사람 더 사랑한 사람 더 희생한 사람들이 주님 가까이에 갈 겁니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 가운데서만  굳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이번에 히브리서를 강해하면서 얻은 소득중에 하나가 이 구절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예수님의 속죄의 비유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계십니다. 성막에서의 제사를 잘 생각해보니 제단에서 양이나 소를 잡고 피는 지성소까지 가지고 갑니다만 그 몸은 진밖으로 나가서 태워 버립니다.

이 것은 예수께서 성문밖 골고다에서 고난을 받으신 것의 비유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구절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려면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약간 고어체나 한자를 쓰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우리 나라 성경번역이 딱딱해서 싫다고 하시는데 저는 성경의 쓰여진 문체가 좋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능욕 이라는 단어가 너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능욕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수치와 멸시를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능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까 제 얘기도 드렸지만 우리는 능욕이나 고난 포기 이런 것이 없이 세상 말로 날로 먹으려는 마음이 많습니다.

지금의 믿음보다 더 자라고 싶은 마음은 아마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영문밖은 남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남들이 많이 가는 넒은 길은 하늘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 주님이 이미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작년이나 올해나 같은 믿음 더 이상 이래서는 않되겠다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은 이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4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요즘 한국 사람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기독교에 관해 시비를 겁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열가지중 여덟 아홉가지는 저도 반박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도 얘기하지 않습니까? 선한 일을 하다가 핍박을 받으면 모르겠지만 욕먹을 일 때문에 욕먹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고

이 모든 것이 14절에 말하는 장차 올 것을 찾는 믿음이 기독교인들의 사는 모습에서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겁니다. 그냥 몇몇 교인들이 그러는 것은 봐주겠는데 유명한 목사님들 큰 교회들까지 그러니까 위선자로 보이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땅에서 제일 싫어하시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외식하는 자 위선자들 아닙니까? 우리도 교회에서 말고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하늘나라에 소망있는 사람다운 모습이 보여야 됩니다.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지만 너무나 어려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님 오실 날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행함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하나님께 그리고 세상에 확실히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항상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것이 뭐라고 하십니까?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합니다.

최근 십수년동안 예배의 형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 중심에 찬양이 있습니다. 제가 94년도에 미국에 왔더니 호산나 인테그리티라는 팀이 대형 찬양 집회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음악계에서도 내노라하는 분들이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니까 얼마나 음악이 멋있는지요 거기다가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그런데서 스스럼 없이 감정표현을 잘합니까? 청중들이 울면서 손을 번쩍 번쩍들고 그걸 또 비디오로 잘찍어 놓으니까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요 그 때 막 은혜는 받았겠다 날마다 봤습니다.

그때 한국에서는 하영조 목사님 동생되시는 하스데반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주찬양이라는 팀이 있었습니다. 레코드를 들어보니 얼마나 수준이 한심한지요. 무슨 동네 공연녹음해 놓은 것 같았습니다. 물론 순전히 음악적인 것에 관한 얘깁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조금만 사이즈가 되는 교회들은 유학까지 다녀온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들이 다 반주를 합니다. 사운드가 너무 훌륭합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참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 찬양인도자들이 찬양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예배의 회복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입니다. 물론 좋은 사운드를 만드는 것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거라고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찬양이 좋으면 그 사람의 마음이 준비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요즘 유행하는 찬양 스타일 그 분위기가 예배의 회복이라고 저는 볼수가 없습니다.

그 근거로 저는 15절의 말씀을 들고 싶습니다. 찬미의 제사는 예수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라는 이 말씀입니다. 성악하다가 찬양사역자로 바뀐 사람들이 많아서 몇몇 분들을 만나보고 그 분들 녹음도 도운 적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관계를 가진 분도 있는데 그 분들의 찬양이 정말 은혜스러울때는 그 분들이 열심히 전도하던 시절뿐이었습니다.

선입견을 가지고 본 것이 아니라 어 오랜만에 들어 봤는데 찬양이 좀 이상하게 변했다 싶은 분들은 만나보면 그 대화내용도 삶의 모습도 많이 세속화되었었습니다. 찬양은 우리의 평소의 삶에서 그 믿음의 저변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평소에 예수이름을 증거하는 것이 있어야 참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 대한 감사가 그 이름을 증거하지 않고는 못 배길만큼 내 마음에 가득차 있어야 찬양다운 찬양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결국 우리 믿음은 가장 기본적이고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것들 육신적으로나 마음으로는 어렵게 느껴지는 바로 그것들 이런 것들을 성령의 인도로 하나 하나 순종할 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피하지 말고 순종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믿음 생활 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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