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받은 표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초기 이민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이너 같은 식당에 들어가면 미국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시절이었으니 한국 사람들은 구경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동양인만 보아도 반가웠다고 합니다.

“혹시 한국사람이세요?” 라고 물어 한국 사람이기만 하면 반가워서 악수를 하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사람이 반갑기는 커녕 오히려 한국 사람을 피해다니는 한국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교민 사회가 각박해졌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편지의 바울은 아직 한 번도 골로새 교인들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그 지역의 부유한 유지였던 빌레몬이 집을 열고 바울의 제자 에바브라가 사역자로 헌신하며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라 바울이 복음을 전해 가르친 제자와 성도가 힘을 합쳐 세운 교회인 것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바울 편지에 묻어나는 사랑이 이 시대 교회 안에 함께 신앙생활하는 사람들보다 더 진합니다.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 하나 때문입니다. 이 시대가 가장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성도간의 뜨거운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주님께서는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침범하지 못하는 교회는 사랑의 성벽이 튼튼하게 세워진 교회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튼튼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이 사랑은 감정의 사랑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가 우리를 위해 베푸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은 쉽게 무너지고 미혹 당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실제적으로는 수십 배 더 교회를 해롭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 간에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가르칩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거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만 생각하지 자신이 남에게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상처 받은 사람은 많은데 상처를 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랑으로 자기를 사랑하셨는지를 아는 만큼 형제를 사랑합니다. 자기의 부족함과 미련함 그리고 추악함을 깨달을수록 그런 자신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알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합니다.

개 중에 가장 아이큐가 높은 종은 약 250개의 단어까지 알아들을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은 개들은 50개 정도까지 알아 듣구요. 하지만 사람 앞에 개는 개일 뿐입니다. 자기들 사이에서는 다섯 배의 능력차이가 나지만 개라는 종의 한계를 넘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보며 한심하게 생각하고 경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종의 한계도 뚜렷해서 깊이 들여다 보면 모든 사람 안에 같은 죄가 있습니다. 바울도 자기 안에 있는 죄를 깨달으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자기 죄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주님께서는 그들의 눈 먼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그 눈 먼 것 중 하나가 자기 죄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맹인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맹인 학교에서는 복도를 지나가다가 학생들끼리 부딪히면 무조건 자기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한다고 합니다. 상대방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멀쩡히 두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은 지나가다 어깨 한 번 스친 것을 가지고 칼부림까지 나는 경우도 있는데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은 누가 잘못했는지 생각도 해보지 않고 무조건 사과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남학생은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자신까지 온 가족이 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합니다. 그런 그가 누나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누나 우리 가족이 다 시각장애인이라서 감사해. 우리는 서로 다 이해를 하잖아. 그런데 내 친구는 자기 집에 혼자서 시각 장애인이라 외로울 때가 많다고 하더라고”

성도가 자기의 더러움과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달으면 다른 사람들은 다툴 만한 상황에서 서로가 자기가 잘못했다고 사과하며 안아주는 사람이 됩니다. 자기 같은 더러운 죄인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남의 허물을 보는 눈이 무뎌지기 때문입니다.

용서 받은 표는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 받은 표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얼굴도 보지 못한 성도를 이렇게 깊이 사랑하는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는 하나님께서 자기 같은 더러운 죄인을 사랑하셔서 아들의 피로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랑과 용서가 넘치는 교회는 작은 천국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천국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형제를 사랑하게 하소서
  2. 자신의 더러운 죄를 깨달아 다른 사람의 어떤 잘못도 용서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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