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는 반드시 진노를 부른다

로마서 1장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불의한 일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크게 두가지 형태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내리시는 진노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적극적인 진노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시키신 것이나, 애굽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 그리고 마지막 때에 내리시는 심판같이 오직 하나님의 의지로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사실 근본적으로는 이것도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는 진노는 한국 속담 중에 “기름가마를 지고 불섶으로 뛰어들어간다.”는 말처럼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영적 또는 물질적 창조의 질서를 역행함으로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캘리포이아에는 산불이 자주 납니다. 그 이유는 건조한 날씨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가 자주 내리는 동부에서는 전혀 산불이 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나 산불이 나는 이유는 건조하기 때문이지 지역의 이름 때문이 아닙니다. 동부에도 서부와 같이 건조한 날이 계속된다면 당연히 산불이 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과학이라고 부르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이 창조의 섭리는 물질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것을 성경은 진리라고 표현하는데, 건조하면 산불이 나는 것처럼 사람이 하나님 앞에 불의를 행하면 그에 따른 결과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개인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면 개인에게 저주가 임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마음에 큰 번민이 생겨 마음이 쉬지 못하고 악한 영에게 휘둘렸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계속되면서 사울은 다윗에 대한 질투와 의심에 사로잡혔습니다. 만약 사울이 다윗을 믿고 계속 중용했다면 그의 왕위는 더 견고했을 것이고 요나단도 다윗의 도움으로 훌륭한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복 덩어리였던 다윗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10년 가까이 쫓아다녔던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려주었고 그 결과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이 개인의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사울이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 받고 수십년이 흐른 후에야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당장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눈 감아 주시거나 잊어버리신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또 땅에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하면 많은 전쟁과 자연재해들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대로 지음 받은 모든 피조물들이, 혼자 역행하고 있는 사람을 바이러스와 같이 인식해서 제거하려는 면역시스템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레위기 18:24-25,28)

개인의 죄가 집단의 죄로 변하고, 그 죄악이 그 땅에서 당연한 것이 되면 땅이 그들을 토해 냅니다. 가나안 주민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칼로 멸망했고, 소돔과 고모라는 하늘에서 내리는 불 비로 멸망했으며, 폼페이는 화산폭발로 멸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가 세계의 절반 이상이 동성연애를 비롯한 온갖 더러운 죄를 서슴치 않고 지으면서 죄책감도 없고 한 발 더 나가서 법으로 그것을 옳다고 보호해 주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한마디로 멸망의 전조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사회적 동의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다 동성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법으로 동성연애를 인정함으로 사회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멸망이 우리가 사는 사회 앞에 큰 발걸음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에게나 사회에 임하는 모든 재앙들은 결국 기름가마를 지고 불섶에 뛰어든 인간의 불의의 결과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지으셨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든지 반드시 그 책임을 영원히 지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은 세상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혹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불의하게 살고 경건치 못한 삶을 살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것이 실상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불의할 때도 평안하다면, 우리에게는 돌이킬 기회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에 해로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즉시 작은 이상들이 오는 것이, 그것들이 모여서 큰 병이 되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늘의 소망을 가진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평안하게 살 것만을 구하지 않아야 합니다. 먼저 불의를 행하지 않으려고 힘써야 하겠지만, 연약한 우리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의를 행할 때에는 육신의 고난을 통해서라도 의로운 자리로 돌아오게 해주시기를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건조해도 산불이 나기 전에 많은 비가 쏟아지면 위험을 넘기게 되는 것처럼, 불의를 행한다 할지라도 돌이켜 은혜의 비를 맞게되면 불의의 결과를 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회개입니다.

주님의 보배로운 피가 오늘도 얼마든지 역사하시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찢기고 터지고 만신창이가 된 사람이 자기는 괜찮다고 우기지 맙시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가면 얼마든지 씻어 정결하게 되는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그 계명의 일점일획이라도 취소하지 않으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 요행은 없습니다. 불의한 사람은 시간이 문제이지 절대로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순종하고 회개하기를 힘써 하나님의 자비를 입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나의 범죄를 알게 하시고 믿음으로 십자가 앞에 나아가 회개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게 하소서
  2. 우리가 속한 사회의 범죄를 위해 기도하게 하셔서 세상에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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