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면

마태복음 24장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성도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을 가지도록 힘써 주십시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성경지식이 없어도 괜찮은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 아는 것 같아도 막상 혼자 설명을 해보라고 하면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말에 재주가 없어서 그런 분들은 문제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식은 해박하고 관심만 있으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성경에 대한 것은 모르는 것이 겸손이 되어버려서는 곤란합니다.

중세 카톨릭 암흑기에는 사제들과 지식층들만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성경이 다 라틴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때를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성경을 접할 수 있는 이 때에 성경을 겉만 알거나 모르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 죄악입니다. 성경을 읽고 지식을 가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멸망의 가증한 것’과 ‘서지 못할 곳’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성경과 역사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아야 시대를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니엘서 11장 31절의 내용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먼저 아실 것은 하나님의 예언은 중복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다니엘서의 말씀은 이미 주님 오시기 160여년 전에 한 번 이루어졌습니다.

기원전 167년 안티오쿠스 4세라는 셀류시드의 왕이 제우스 신상과 자신의 신상을 성전 안에 세우고 돼지와 여타 부정한 짐승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한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니엘의 예언을 다시 한 번 언급하시므로 이것이 마지막 때에 다시 일어날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데살로니가 후서 2장 3-4절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두 말씀을 함께 묵상해보면 우선 이 ‘멸망의 가증한 것’은 복수가 아닌 단수의 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대적하는 일의 정점에 서있는 적 그리스도의 수장을 뜻합니다.

그리고 ‘서지 못할 곳’은 바로 예루살렘 성전을 이야기합니다. 아시는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70여년 경에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로마의 침공으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이 재건된 이후로 그 땅의 유대교인들은 성전을 재건해기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를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 그 자리에 이슬람의 제2 성지인 황금사원이 서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성전을 지으려면 전 세계의 이슬람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 지금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의 자리는 황금사원이 서있는 자리가 아니라 그 옆으로 투여전히 이슬람의 소유지만 건물이 서있지는 않다고 합니다.

전쟁을 치루지 않아도 어떤 종류의 협약만 있다면 건축이 가능한 위치라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데 있어서 예루살렘 성전의 역할은 제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우리는 제사를 드릴 필요도 없고 그곳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려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을 근거로 이야기하면 이 성전이 서는 것이야 말로 마지막 때의 중반을 넘어서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3성전이 자꾸 거론되는 것입니다.

이 성전이 서고 누군가가 그곳에 서서 자기가 신적인 존재라고 선언하는 것을 보면 믿는 사람들은 신속하게 피해야 합니다. 어디로 어떻게 피하는지 아직은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이단들이 태평양의 섬나라 같은 곳에 집단 거주지를 만들어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지붕 위에서 그것을 보았다면 집에 들어가지 말고 빨리 피하고, 밭에서 일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면 겉옷을 가지러 가지도 말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 만큼 지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날 저녁 롯은 천사들이 전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새벽까지 미적거리다가 근처에 있는 소알 성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과정에서 아내를 잃게 됩니다.

전날 저녁에 바로 움직였으면 소돔에 유황불이 떨어지는 것도 보지 못했을 것이고 그 아내는 뒤를 돌아볼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소금 기둥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는 때가 이와 같습니다. 만약 어디론가 피신을 해야 한다면 재산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쓸 것을 마련하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미련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얼마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삶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 일에만 돈을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하고 재물을 쌓아두지 말고 의미있게 잘 써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자기의 소유를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겉옷도 가지러 가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절대로 농담이나 과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잠시 기뻐하지만 성도는 울 때가 옵니다. 그러나 그 때를 지나면 영원히 세상은 통곡하고 성도는 기뻐할 때가 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고 우리가 세상을 긍휼히 여겨야 할 이유입니다.

어두울 수록 빛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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