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4장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주님의 재림을 한 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두 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놀랍게도 이 두 가지 견해가 다 틀리지 않다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왜 이 두 견해가 다 틀리지 않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크게 이야기한다면 재림은 한 번입니다. 처음 오셨을 때에 땅의 모든 일을 다 마치시고 승천하신 주님께서 다시 돌아오신 것은 한 번의 일입니다.

다만 이 한 번의 재림이 두 가지 다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공중재림입니다. 이 때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휴거, 즉 첫째 부활이 일어나는 때입니다.

오직 첫째 부활에 합당한 사람만 공중에서 열리는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때이기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주님께서 재림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은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이 그 날을 사모했지만 실격된 사람들 뿐일 것입니다.

그리고 공중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땅에는 여러가지 환란이 일어납니다. 이 환란은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박해도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와 같은 재앙들도 일어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다 마쳐지면 주님께서 공중에서 지상으로 재림하시면서 천년왕국이 시작됩니다. 천년왕국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지난 이천여년간 구원의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이스라엘을 위한 나라입니다.

이방 성도들 중에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 뿐입니다. 그리고 그 천년이 다 지나고 나면 이제 정말 마지막이 오고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다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천년왕국이 재림의 두 번째 스테이지입니다. 재림을 한 번이라고 하는 주장도 두 번이라고 하는 주장도 그 내용은 같기 때문에 둘 다 인정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무슨 판타지 소설 같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죽어서 영원한 천국에 간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다면 환상에 가까운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혹시라도 우리 성도 분 중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믿음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보셔야 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데 천년왕국이 있고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한다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아는 것보다 어떻게 이 일들을 통과해서 첫째 부활에 들어가는 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통달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또 그 중에 믿음이 인정받아 첫째 부활에 들어가는 것도 그 길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즘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주님이 천국에 가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놀이동산도 아니고 식사가 포함된 리조트도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가는 곳이 지옥이지. 지옥을 피한 자들이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지막 때의 징조와 스케줄을 다 외우는 사람이라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못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지식과 믿음은 서로 따로 놀 수 있어도 믿음과 주님 사랑은 항상 같이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 받을 믿음과 첫째 부활에 들어갈 믿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주님을 깊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이 마지막 날 나팔소리와 함께 자기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같이 생각하는 것은 “그 일들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는 주님을 말씀처럼 이 일들이 이루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믿음이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여지껏 넋을 놓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것은 정신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 사랑하고 싶다고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면 주님께서 그 마음을 주십니다.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새 계명을 온 마음을 다해 행하면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더해집니다.

마지막 때를 아는 것이 미혹이 되지 않고 생명이 되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주님 품이라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따라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 Articles

(8) 그 날에

마태복음 24장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마태복음 24장 낭독

[presto_player id=3206]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서로 비방하지 말라

야고보서 4장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겸손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잠언 26장 8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9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10 장인이…

첫사랑

에베소 사람들은 죄에 대해 단호했습니다. 그들은 그릇된 것은 무엇이든 밝혀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포기할 생각은 단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 님께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