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부활, 절망 중에 소망

요한복음 20장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제자들은 그 시신까지 확인했습니다. 당시 풍습이었던 돌 무덤에 그 시신을 뉘어드릴 때 제자들의 가슴에 품었던 부푼 모든 꿈들도 죽었습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셨을 때 가장 못되어도 서열 십삼위의 권력자가 되기를 꿈구며 주님을 따랐던 삼 년 반의 세월이 이제 자기들의 인생에서 가장 숨기고 싶은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숨어 지냈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기는 불안했고 당장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기에 그들은 그렇게 모여서 떨고 있었습니다.

도마는 원래 의심이 많던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그 의심에 더 심해져서 나머지 열 한 제자가 한 목소리로 말하는 주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장면을 통해 소망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소망은 사람의 삶을 잇게 해주는 힘입니다. 빈민국일수록 자살율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일단 그들은 뭔가를 먹을 소망이 있습니다. 한 끼를 잘 먹기도 어렵지만 동시에 그렇게 실현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또 이웃이 다 가난하기 때문에 자기만 특별히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상대적 빈곤감은 훨씬 덜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발달하고 특히 미디어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자살이 많아집니다. 예전에는 귀로만 듣던 부자들의 삶을 눈으로 보게 되니 먹고 사는 것만으로는 전혀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먹고사는 걱정을 하지는 않아도 자기들이 동경하는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선명해질수록 죽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 차이를 토대로 말한다면 실현 가능한 소망이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삼년 반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가진 소망은 날이 갈수록 더 실현이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전역을 다니는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희망에 들떠서 나는 듯이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그것도 일말의 희망도 가질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주님이 그냥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이단과 반역자 취급을 받으면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이 재기할 가능성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각자의 악하고 약한 모습들이 더 심하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그대로 더 많은 시간이 지났다면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생겼을지 모릅니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는 소망의 더 중요한 요소 한 가지를 알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소망의 근거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했지만 각자의 꿈에 부푼 제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그것들을 해석했습니다.

그 결과로 더 크게 부푼 가짜 소망이 주님이 죽으심으로 한 번에 허물어지니 그 상실감이 더 심각했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성도들도 이런 모습이 많습니다.

정말 믿음이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도 그 믿음에 이런 결정적인 헛점들을 보이는 일이 많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적이 없는 일에 소망을 두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구원을 받을만한 충분한 믿음이 있어도 삶에서 고난을 받거나 복을 놓치기 쉽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표현대로라면 애매한 고난을 받기 십상인 믿음인 것입니다.

만약 제자들이 주님께서 그동안 하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었다면 그들은 이런 절망의 상태가 아닌 큰 기대와 소망으로 부풀어 있을 것입니다. 고난을 받고 돌아가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들은 하나도 머리에 남지 않고 한 번도 하시지 않은 이스라엘의 왕권에 관한 이야기를 각자 자기들의 버젼대로 창작해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지금 이 절망의 이유인 것입니다.

목사라는 사람이 행복할 때 생각나는 대상이 아니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생각나는 대상이라서 저는 주로 성도들의 어려운 순간을 함께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 어려움의 이유가 잘못 가진 소망 때문인 것을 봅니다.

이런 사람은 진짜 소망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소망을 가지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반드시 신실한 약속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의 근본부터 비뚤어진 소망은 주님께서 잡히셨을 때부터 죽으시고 무덤에 계셨던 사흘 동안 그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있었기에 주님의 면전에서 세 번이나 그분을 부인했던 베드로는 나중에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또 두려워 숨었던 제자들과 주님의 부활을 봐야 믿겠다는 도마도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복된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어려운 순간들도 그렇게 우리 믿음의 허물어진 곳과 금이 간 곳들을 가려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로 허물어진 곳이 세워지고 금이 간 곳들이 온전해지는 역사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소망하고 그 마지막, 믿음의 결국인 구원을 소망하는 것이 참 소망입니다. 어두움이 가장 짙을 때가 새벽에 가장 가까울 때입니다. 절망 중에 소망하는 참 소망으로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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