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순전한 믿음

로마서 3장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 믿음의 기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고 그 선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선한 약속이 변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무시하지만, 그분의 경고의 말씀도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믿지 않는다고 그 미쁘심이 폐하여지지 않는다는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기 마음이 변하는 대로 하나님이 변하시는 것처럼 느낍니다. 자기에게는 그 느낌이 너무 선명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짓습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진리가 자기 기분에 따라 흔들리는 사람은 많은 시험에 시달리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궤변을 만들어내서 다른 사람까지 흔들어 놓습니다. 아담 한 사람이 죄를 범해서 많은 사람에게 죄가 들어온 것처럼, 한 사람 믿음이 비뚤어지면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물론 제대로 선 한 사람의 믿음은 그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잘못된 믿음은 언제나 있었지만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이 잘못된 믿음들이 신자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됩니다. 그리고 귀가 가려운 사람, 다시 말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면서 천국에 갈 길을 찾는 사람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 것들을 받아들입니다.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로 시작하는 5절부터 8절까지의 내용은 바울 당시의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궤변입니다.

이들은 우리 속담에서 예를 든다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논리를 사용했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낸다면 과정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죄인의 한계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결과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한 것은 의도도 거룩하고 의롭고 과정도 거룩하고 의롭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조금의 불의도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아들이 그 고난을 당하실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물며 의도 자체가 불의하고 과정도 불의한 일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가 있겠습니까?

많은 신자들이 선을 이루기 위해서 악을 행하자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서울의 모 교회는 교회 공간을 넓게 사용하려고 도로법상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공사를 감행했습니다. 반대하는 구청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의심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법 위에 영적 제사법이 있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법은 세상의 법 위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애초의 의도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들의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사 의도가 선했다 할지라도 과정 역시 누가 보더라도 선해야 합니다.

이렇게 많은 성도들이 나름대로의 궤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숨이 턱 막히게 하는 궤변을 펼치는 신자도 있습니다.

분명한 원칙은 이것입니다. 의는 의이고 불의는 불의입니다. 불의가 섞이면 의는 불완전해집니다. 우리가 할 일은 불의를 회개하고 의를 따르는 것이지, 여전히 불의한 삶을 버리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룰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묵상하고 기도해도 불의가 의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고 그 불의를 버려야 합니다. 완전한 의를 바라는 사람이 완전한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는 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이 정금과 같이 순전해지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주님께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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