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로마서 8장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이원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을 두 가지 다른 것의 대립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 선과 악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기독교에도 많은 이원론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영과 육을 두 가지 다른 존재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영혼이 부활해서 천국에 가기 때문에 육체는 영생과 별 상관이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육신이 부활하시고 변화하셔서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육체가 죽으셨던 사흘간 영으로 옥에 다녀오셨다고 베드로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육신이 부활하셔서 사십 일 간 땅에 머무셨고 그 육신이 승천하셔서 스데반이 죽기 전에 본대로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육신이 부활하여 영생에 들어가게 될 겁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에서도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라고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육체의 삶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영과 육을 분리해서 생각합니다. 그래서 육체로 짓는 죄들은 주님의 피로 다 깨끗해 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편안하게 죄를 짓습니다. 아무리 회개를 외쳐도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정결함을 강조하는 설교를 했더니 “제가 정결하지는 않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이정도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라며 반발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주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죽은 몸도 살리십니다.하지만 우리가 육신에 져서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면 주님의 영이 온전히 우리 안에 거하지 못하신다는 의미의 말씀이 바울의 다른 여러 서신서에 나옵니다. 또 육신의 여러가지 죄를 짓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선포하기도 합니다.

죄로부터 자유하다는 것은 죄의 종 노릇하는 데서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죄에 따르는 책임이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로마서의 말씀들은 이 자유를 확인해 주는 것이지 죄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요한복음 6장 63절 개역한글)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신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애매하게 남겨 놓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뜻일 수도 있지만 다른 뜻일 수도 있지”라는 상태에서 더 진전을 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거하는 신자는 적어도 자기가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단계가 보이지 않겠습니까?

길을 잃은 사람이 다시 길을 찾으려면 최소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것을 거부하고 있거나 알려줘도 부인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길을 찾겠습니까?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열왕기상 18:21)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제단에 떨어지는 불로 당신을 나타내신 후에야 바알 선지자들을 잡아서 죽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신자들이 엘리야의 음성에도 꿈쩍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습니다. 영을 따라 살면 육신은 여러가지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가 두려운 것이지요.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의 생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누구도 세상에 거하는 동안에는 두 토끼를 다 잡을 수 없습니다. 정말 영을 따라 살아서 영광스러운 부활을 이루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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