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개를 잃어버린 세대에게

사무엘하 20장 3 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그들에게 관계하지 아니하니 그들이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

사무엘서는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서입니다. 그래서 참 많이 읽은 책 중의 하나이지만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이것은 다윗의 불공평한 처사라는 생각을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압살롬과 동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 때문이고 그 반란은 바로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그를 죽인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번에 읽을 때에 생각난 율법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처녀가 남자에게 겁간을 당할 때 그 일이 성 안에서 벌어졌고 그 처녀가 소리를 지르며 강력히 반항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강제가 아니기 때문에 남녀를 다 죽이라는 명령입니다.

저는 항상 이 열 명의 후궁들이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에게는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세상의 논리로는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만 그 당시로는 얼마든지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 춘향전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적어도 저와 비슷한 세대 중에는 춘향전을 읽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겁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멀리 떠나 보낸 애인 때문에 권력자나 부자의 구애를 거절하는 사람을 비웃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해서 만약 그 시대 사람들이 지금 세상을 보면 경악할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가장 쉬운 예로 지금 미국의 10대들이 동성연애, 심지어 동성결혼까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제 나이 세대의 사람들은 꼭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이걸 평생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신랑 되시고 교회가 신부가 되는 것이 성경적인 남녀 관계인 것을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당시의 도덕적인 기준으로 이들이 죽음으로 다윗에 대한 절개를 지키지 않은 것은 충분히 다윗이 그들을 평생 생과부로 지내게 할 만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을 죽이지 않은 것이 자비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후궁들의 특징을 생각해 봅시다. 후궁들은 왕을 사랑하기보다는 왕의 총애를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여인들입니다. 성경에 이름 한 글자도 남기지 못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당연히 왕을 위해 목숨을 버릴 절개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성도 중에도 그런 성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천국과 지옥도 믿지만 보상은 원해도 주님을 사랑하지는 않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이들이 바로 후궁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지금 청소년들에게 절개라는 개념을 설명하기는 참 어려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믿음의 절개라는 말을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너무 쉽게 세상에 믿음을 내어 주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절기를 철저하게 지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의 학교들은 유월절, 부림절 등의 절기가 되면 이삼 일씩 학교를 닫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은 처참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정착해서 세운 나라, 20세기 선교의 중심지라는 미국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있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특별행사를 할 때 토요일보다 주일을 선택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토요일에 하면 유대인이 많지는 않아도 그 사람들이 다 불참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얼마가 되었든 자녀들이 대학을 가는데 조금이라도 필요하다면 고민도 해보지 않고 교회가 아닌 학교를 택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딸이 학교 오케스트라를 하는데 마지막 연습과 공연이 둘 다 주일이라고 이 주 연속 예배를 빼먹고 학교에 가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이 목사님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죽음으로 절개를 지키지 않은 후궁들이 죽음은 면했지만 더 이상 다윗의 부인들이 아니었던 것처럼 어떤 핑계 때문이라도 주님을 배신한 사람은 지옥은 면할지 몰라도 주님의 신부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바울의 이야기는 그가 오랜 목회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제가 여지껏 이 후궁들이 억울하다고만 생각하면서 그들이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것을 한 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죄인 안에는 무너지기 어려운 견고한 진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어떤 부분은 하나님도 건드리시지 못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건드리시지 못합니다. 우리의 직업이 그렇고 가정이 그렇고 돈이 그렇고 시간이 그렇습니다. 자녀의 공부가 그렇고 우리의 취미생활이 그렇습니다.

오늘 이 후궁들이 당한 일들과 이 후궁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을 마음자세부터 잘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일이 옳고 그르냐는 묵상의 내용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일이 분명히 옳은데 왜 옳은지를 묵상하십시오.

절대로 주님이 너무하신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를 위해서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피 한 방을 흘린 일 없는 자녀에게 할 수 있는 그 일을 주님을 위해서는 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생을 걸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영광과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성경 전체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 우리 일생에 가장 진지하고 심각하며 냉정한 마음으로 우리의 믿음을 볼 수 있게 하소서
  2. 목숨을 건 절개가 빠진 것이 왜 믿음이 아닌지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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