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하는 자여! 하나님께서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6장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절의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로 약속하신 복과 번성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오래 참아 그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약속과 사람의 현실의 차이를 믿음으로 메꾸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을 보십시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까지 그의 삶은 실망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함께 하란 땅을 떠나온 조카 롯이 있었습니다. 자식처럼 생각했지만 서로의 소유가 많아지는 바람에 결국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온유한 아브라함은 롯이 먼저 살 곳을 선택하게 했지만 롯이 소돔 땅을 선택한 결과로 아내를 잃고 비참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오래 기다려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종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런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약속이 이루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을 겁니다. 자기의 씨인 것은 맞지만 함께 약속을 받은 사라의 태를 통해 낳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삭을 낳았을 때 그는 기쁘기도 했지만 이삭을 희롱하는 이스마엘을 미워한 사라가 그를 내쫓았기 때문에 큰 슬픔도 겪게 되었습니다. 종의 아들이지만 그에게는 첫 아들이었던 이스마엘을 떠나 보내며 아브라함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과 번성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받게 됩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지요. 그가 받은 약속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명령이었지만 그는 순종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모든 상황 중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아 복을 받았고 또 거의 죽었던 이삭을 통해 그의 자손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했다고 말씀합니다.
자기의 느끼는 감정과 현실이 전혀 축복 같지 않았을 때도 그가 의심하지 않은 것은 그 약속을 주신 분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보다 더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맹세가 아직 유효합니다. 무엇보다 아브라함과 같이 오래 참아 하나님의 복을 받았던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의 이야기와 실존인물들이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중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크게 낙담하던 중 자기와 같은 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을 고친 의사를 만나게 됩니다. 직접 만나본 그 의사는 신뢰가 갈 만한 언변으로 자신을 안심시킵니다. 무엇보다 그에게 치료를 받은 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게 됩니다.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몸에는 변화가 없고 오히려 더 고통스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의사에게 물어봅니다. “저 오히려 더 아픕니다” 의사는 그것이 치료의 과정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자기의 의사직을 걸과 맹세합니다. 다른 경험자들도 동일한 말을 합니다.
그렇게 얼마간 고통을 참으며 기다렸더니 정말 차도가 있게 되고 결국은 완치 판정을 받게 됩니다. 이 환자가 끝까지 인내할 수 있게 한 힘이 무엇일까요? 의사의 약속과 완치된 환자들의 증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는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지만 우리에게는 아들을 주셔서 맹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믿고 오래 참아 그 복을 받은 구름 같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의심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전혀 축복 같지 않은 것입니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고통을 주고 몸이 병들고 피곤합니다. 날이 갈수록 기쁨보다는 고난만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느낌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히브리서는 고난 받아 흔들리고 있는 성도들을 붙잡아 세우기 위해 써진 편지입니다. 이들은 우리보다 더 큰 고난과 의심 속에 하루 하루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의 느낌과 현실이 아닌 하나님의 맹세를 믿으라고 강력하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자기 자신이 만물의 찌꺼기 같이 무가치하고 양심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의 맹세가 우리와 함께 합니다.
물질과 건강은 복의 척도가 아닙니다. 부하고 건강해도 자만하지 말고 가난하고 약해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그 모든 일이 다 나의 죄 때문인 것 같아도 넘어지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 복과 번성을 맹세하셨기 때문에 끝까지 참고 견디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믿음으로 인내하여 복과 번성의 약속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 똑같은 현실을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 창조주 하나님의 맹세를 붙잡고 절망과 슬픔을 이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