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한 가지 생각
어느 날, 설교 책 몇 권을 양손 가득 들고 있다가 그리스도의 심판의 보좌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한 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종말론 가운데 가장 소홀히 해온 부분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책들과 설교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의 보좌를 단일 주제로 다루는 책들의 숫자는 한 손의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왜 그런 것일까? 사역자들이 영혼을 꿰뚫는 그러한 진리에 대해 묵상하는 것을 겁내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도 그러하리라!
장차 언제인가 우리 각자는 친구들이나 배우자나 변호사의 옹호와 지지가 아무런 효력도 발생하지 못하는 곳, 하나님의 두려운 보좌 앞에 서야 한다.
그날이 오면 각 성도나 죄인이 수십억 개 눈들이 주목하는 대상이 될 것이며, 만왕의 왕이신 그 분의 불꽃같은 눈이 우리 각자를 꿰뚫어 보실 것이며, 흠 없는 완벽한 기록이 우리가 땅에서 살았던 삶을 상세히 밝힐 것이다.
그날이 오면 땅에서 살았던 인생과 시간은 우리 뒤로 물러날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며, 교정이나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혹자는 오마 카얌(12세기 신비주의자)의 시구(詩句)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대의 모든 신심(信心)도
그대의 모든 재치도
그것을 유혹하여
반(半)줄이라도 삭제하게 할 수 없고
그대의 모든 눈물도
그것에서 한마디 말도 지우지 못하리니!
나는 존 웨슬리나 스티븐 그렐렛(19세기 선교사)이나 과거의 숱한 전도자들이나 기도의 용사들이 주님 면전 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과연 그날에 나 자신은 어떨지 확신할 수 없다.
당신은 어떤가?
사도 베드로는 성경 말씀 가운데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벧후 3:16)고 말한다. 사도 베드로가 그렇게 말한 까닭이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그런 말씀들이 불합리하거나 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말씀들의 내용 자체가 복잡하거나 혹 우리가 그런 말씀들을 중요하지 않은 문맥의 일부로간주하기 때문인 것 같다. 반면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소홀한 대접을 받는 하나님 말씀도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어떤 말씀이 이 시대의 맥 풀린 ‘편한 신앙주의’의 비위에 거슬리는 하나님의 엄정하심을 계시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그 말씀을 무시한 채로 버려 두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바로 이러한 거부된 진리 혹은 무시된 진리의 범주에 속한다.
만일 현대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보다 확대하여 말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되풀이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제보다 축소하여 말하면 안 된다는 점 또한 상기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야 말로 내가 알고 있는 생각들 가운데 가장 정신 바짝 나게 만드는 생각이다.
레너드 레븐힐의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