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죄의 손가락을 자기에게 돌리라

로마서 2장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성경을 읽는 자세는 자기에게 감동이 되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기대를 가지고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깁니다.
 
마음의 감동을 따라가는 것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감정만 주신 것은 아닙니다. 지성과 의지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꼭 감정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머리로 판단하고 의지로 순종하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똑같은 순종으로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에 감동을 구하는 것 말고 가져야할 또 다른 자세는, 그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그 글이 써진 의도는 무엇인지, 앞뒤 문맥과 그 당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해하고 순종하려는 것입니다.
 
1장에서 시작해서 2장으로 넘어오면서 바울은 개인의 죄악을 낱낱이 파헤쳐, 아담 아래 태어난 모든 사람은 복음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차근차근 세우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특별히 남을 정죄하는 사람에게, 그 정죄의 손가락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인 것을 알려줍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쾌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약성경에서부터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혀의 죄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정신줄을 놓고 그 일을 하는 이유는 남을 그 때 느끼는 도덕적 우월감이 주는 정신적이 쾌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판의 대상을 남에게서 나 자신으로 바꾸고, 그 목적을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평강을 누리려는 것으로 바꾼다면  그 비판은 죽이는 죄에서 살리는 회개로 바뀌게 됩니다.
 
남을 정죄하는 것의 소득은 ‘0’입니다. 아니 정죄하는 만큼 하나님께 받을 진노를 자기 머리 위에 더 쌓고 있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정죄한다는 말 자체가 그것이 죄인 줄을 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죄가 없다면 모를까 사람은 같은 종류이기 때문에 자기 안에도 분명히 그 죄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같은 악을 자기도 행하니 “알고 행한 자는 더 많이 맞으리라” 는 주님의 말씀처럼 한 대 맞을 매를 여러 배로 늘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선하다고 해 주라는 말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남의 악을 통해서 자신을 보기를 힘쓰고 오직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아무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사람이 갈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 뿐이기 때문에 바울은 이런 말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앞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군대 가기 전까지 정말 욕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자기 집안은 욕이 없으면 문장이 만들어지지를 않았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는데 저도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 가서 욕을 하지 않기로 작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군대에 가면 욕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자기를 강하게 보이려는 수컷의 본성도 있지만 군대 자체가 너무 힘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욕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저도 욕을 많이 했지만 군대에서 저보다 욕을 더 많이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굉장히 나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욕을 끊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거듭나서 양심이 살아난 사람은 남의 죄를 볼 때에 그것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보면서 자기 안에도 같은 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욕은 끊을 수도 있지만 죄는 본성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고 끊어지지 않습니다.
 
경험하고 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것은 참으로 절망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보이지 않고, 바로 내 머리 위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이 부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절망할 때에야 눈을 들어 그 십자가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믿는 자에게는 절망이 소망의 시작이고, 죽음은 부활의 과정일 뿐입니다. 남을 통해서도 보이고 자기 안에도 보이는 죄로 인해 자기의 소망이 온전히 죽은 사람이 은혜로 다시 살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정죄해서 땅에서 얻는 것은 ‘0’ 이고 하늘의 소득은 ‘멸망’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보면 입을 다물고 자기 안에도 분명히 있을 그 죄를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가 그 죄를 자백해고 씻으십시오. 그리고 그 죄와 싸우십시오.
 
“어차피 또 죄를 짓게 될텐데” 라는 마음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피 흘리기까지 싸우겠다는 마음에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흐르는 죄의 강물에 휩쓸려 가지 않고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세상에 빛이 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남의 죄와 내 죄 때문에 날마다 죽어서 날마다 은혜로 다시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남도 죽이고 나도 죽는 정죄를 그치게 하시고 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2.        죄를 자백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고 그 죄와 싸우는 거룩한 싸움을 계속 싸우게 하소서

Related Articles

(26) 비판은 하나님의 진노를 머리에 쌓는 것이다

로마서 3장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자아가 이끄는 삶은 눈물 뿐이다(2)

마태복음 16장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많은 것을…

정말 잘 믿는 것이 소원인가

마태복음 12장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서로 비방하지 말라

야고보서 4장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그리스도인은 양심이 살아 있어야 한다

히브리서 9장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