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중독성
잠언 5장 3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4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5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6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죄의 열매는 달콤합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은 쓰게 됩니다. 저는 가공된 음료수나 아이스크림들을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신 후에 쓴맛이 남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먹고 마시기는 하지만 열에 여덟번은 뒤에 남는 쓴 맛 때문에 후회를 합니다. 죄도 똑같습니다. 실수로 짓는 죄도 있지만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죄의 소원도 있습니다. 죄의 소원은 사람이 그 안에 품고 있는 죄를 말합니다.
이런 죄들은 사람이 그 죄를 짓기 전에 그 후의 쓴맛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알면서도 죄를 짓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죄인의 속성 중의 하나인 것이지요.
그러나 그저 육신의 연약함과 미련함을 핑계하면서 반복되는 죄를 버리지 못한다면 마지막에는 그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것을 미리 아는 것이 지혜의 유익 중의 하나입니다.
죄의 길은 든든하지 못합니다.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기고 그 길을 걷는 자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바로 ‘중독’ 때문입니다.
마약을 하는 사람이 자기 육신과 마음과 인간관계등이 다 허물어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을 끊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독입니다.
생명의 길이 밝히 보이는데도 해로운 길을 택하는 이유가 바로 중독입니다. 물질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로 주님 안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데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질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물질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중독들이 일시적인 쾌락을 주고 그 인생을 파멸시키는 것처럼 물질이나 명예나 세상 즐거움에 중독된 사람들은 짧은 시간동안 영원한 생명의 기회를 팔아서 그나마도 온전하지 못한 기쁨을 누립니다.
중독의 무서움은 처음에 느낀 불안함을 점점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에 대해 인정하신다는 마음마저 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적하는 모든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분명히 경고합니다. “그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경고를 듣기 싫은 저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 경고는 지옥을 면하게 하는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상을 더 받는 것과 지옥을 면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가슴을 쓸어내릴 일인지를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지혜는 자기에게 들려오는 많은 말 중에서 축복의 소리를 가려내어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자기를 멸망으로 이끄는 음녀의 소리를 구별하게 해서 자기 삶에서 좇아내게 하는 것에 관해 깊이 묵상하시고 삶에서 단호히 죄를 제거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알고도 중독 되는 죄를 철저희 경계하게 하소서
- 커진 후에 싸우지 말고 싹을 자르는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