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죽이기에 태만한 영혼의 참상

이 의무에 태만한 것은 사도가 확증한 것과 정반대되는 조건 속으로 영혼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이 의무를 태만히 하면 속사람은 후패하고 겉사람은 매일 새로워지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에 죄는 다윗의 집같이 흥하고, 은혜는 사울의 집같이 패하게 됩니다.

경건의 연습과 그 성공은 마음속에 있는 은혜를 소중하게 길러주는 주요한 두 장본인들과 같습니다. 은혜가 고통을 받아 가만히 누워 있으면 은혜는 마르고 후패하게 됩니다. 또한 은혜에 속한 것들은 죽을 자리에 있게 되고, 죄는 터를 굳히고 마음은 강퍅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계 3:2; 히 3:13).

제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의무를 생략 함으로써 은혜는 마르고, 정욕은 번성 하며, 마음의 상태는 점점 더 악하게 됩니다. 주님은 마음에 이러한 것들이 많아지면 얼마나 절망적이고 무서운 결과들을 가져오는지 아십니다.

‘죄 죽이기’를 게을리하면 죄는 상당한 기세를 얻어 영혼의 뼈를 부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약하고 병들고 죽기 쉬운 상태로 몰아가(시 38:3-5), 급기야 하나님을 우러러볼 수 없게 합니다(시 40:12; 사 33:24).

그리하여 그 가련한 사람은 점점 더 약해져 더 쉽게 상처받고, 좌절하고, 결국엔 또 강한 대적을 대항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죄의 속임수로 말미암아 마음이 더욱 굳어지게 되면, 마침내 영혼이 피 흘려 죽는 것밖에 다른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요이 8)

실로 ‘죄 죽이기’ 를 게을리 함으로 맞게 되는 이 같은 무서운 결과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지만, 우리는 그러한 일을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겸손하고, 마음이 녹아있고, 항상 상한 심령으로 민감하여 범죄 하기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위해 열심 있고, 하나님의 모든 길과 주일 성수와 모든 규례를 잘 이행하던 아주 훌륭한 그리스도인들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이들이 이 의무 준행하는 일을 게을리하고, 세상적이고, 육적이고, 영적으로 차가워져 성을 잘내고, 세상에 속한 이들이나 세상에 속한 일들과 적당하게 타협하여 신앙을 더럽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아가 자기를 아는 이들을 무섭게 유혹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런 경우를 여러분은 보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의 진상은 이러합니다. 완고하고 고집 센 심령의 상태가 ‘죄 죽이기’를 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곧 속으로는 세상적이고, 율법적이고, 냉소적이고, 편파적이고, 성내기를 잘 하고, 시기하고, 악의에 차고, 교만하면서도, 겉으로는 영적인 자유함과 은혜가 있는 체하는 모습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한 상황으로 인해 참된 복음에 합당한 ‘죄 죽이기’가 우리 중에서 거의 실종되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것이 우리 의 의무입니다(고후 7:1). 매일 은혜 안에서 자라가고(벧전 2:2; 벧 후 3:18), 속사람이 매일 새로워지는 것 또한 우리의 마땅한 의무입니다(고후4:16).

그런데 이러한 일은 ‘죄 죽이기’ 가 매일 실행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죄가 항상 우리의 거룩한 행위에 대항하여 자기의 힘을 쓰되, 우리의 자라는 분량만큼 죄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정욕의 목을 밟아 죄이지 않는 자는 웬만큼 거룩의 진보를 이룩했노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가는 길에서 죄를 죽이지 않는 이는 자기 순례 길의 목적을 향해 한 발자국도 떼어 놓지 않은 사람입니다. 죄의 대항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자, ‘죄 죽이기’ 를 위해 자신을 준비하여 특별한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이 는 죄와 타협한 사람이지 죄에 대해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죽임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우리가 처음 회심 하였을 때, 보편적인 죄 죽이기의 실제 기초가 놓여짐으로써 죄를 자각하고 겸비해지고 새로운 원리가 심겨져 죄에 대항하고 그것을 멸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는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어, 가장 신실한 신자들의 경우에 까지도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죄가 여전히 작용하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죄를 죽이는 일을 평생 매일 감당해야 할 의무로 삼아야 합니다.

죤 오웬의 ‘죄 죽이기’ 중에서

Related Articles

영혼의 힘을 앗아가는 죄

‘죄 죽이기’ 를 통해서만 죄가 영적인 활력과 위로를 박탈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죽이지 못한 죄는 어느 것이든지 반드시 다음의 두 가지 일들을 할 것입니다.…

몸의 행실을 산출하려고 기를 쓰는 죄

죄는 우리 안에 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활동하며 육신의 행실을 산출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죄가 우리를 내버려둔 다면 우리도 죄를 내버려둘 수 있습니다.…

영혼의 평강을 앗아가는 죄를 죽여라

죄는 영혼을 약하게 하는 만큼 영혼을 어둡게도 합니다. 죄는 영혼의 얼굴 위를 뒤덮는 두꺼운 구름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의 모든 광선을 차단하여 버립니다. 우리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에 합당한 삶

빌립보서 1장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히브리서 12장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믿음을 어떻게 보실지 궁금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땅에 있는…